▲상담사들이 부당한 무급노동과 과도한 영업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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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를 녹음하는 건 상담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아정 : "우리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해 녹음을 한다던데 그 녹음으로 보호를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웃음) 오히려 감시를 당하는 거죠. 고객이 틀린 말을 하면 바로잡아주고 싶은데 매뉴얼에 없는 멘트이고 또 그러다 보면 콜이 길어지니까 절대 하면 안 돼요. 그 자리에서 메신저로 한 소리 듣거나 QA점수가 감점되니까. 또 통화 도중 전화가 끊기거나 마지막 맺음말 한마디를 안 해도 다시 전화해야 해요. 너무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업무가 과다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미 :
"친절한 고객도 정말 많지만 통화 처음부터 소리지르는 고객도 있어요. 아침 9시에 걸려오는 첫 번째 전화가 그런 콜인 날은 정말 죽음이죠. 전화 연결을 오래 기다린 고객의 입장에서 용건만 간단히 빠른 상담을 원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희는 통화 맨 처음과 끝, 중간중간에 정해져있는 매뉴얼을 꼭 지켜야 해요.
고객이 조금 피곤함을 느끼는 걸 알아도 반드시 매뉴얼을 지켜야 해요.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감점을 당하고 관리자에게 혼나고, 또 퇴근도 늦어지죠. 저는 직업병이 생겼어요. 다른 콜센터에 전화할 때 '수고하십니다'로 시작하거나 엄청 많이 기다렸지만 절대 짜증내지 않는 것요.(웃음)"
유빈 : "필수안내가 엄청 많아요. 필수안내를 다 안 하면 감점당하죠. 인사말, 마무리 말, 오안내, 고객의 말에 호응을 안 해도 감점이고, 말이 겹쳐도 감점. QA평가된 결과를 받아보면 사유도 다 적혀있어요. 감점요인에 말투, 반말, 예의 없는 말투, 격식 없는 말투 이렇게요. 업무 내용도 많고, 고객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지켜야 할 것도 많아요."
숨 막히는 실적·영업경쟁
- 아무래도 감정노동이다 보니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심할 거 같은데 어떤가요?
지미 : "저는 목이 아픈데도 쉬지 못할 때 가장 힘들어요. 전산처리를 하기 위해 잠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도록 하는 버튼을 오래 눌러두면 모든 관리자가 전화를 다시 받으라고 소리를 질러요. 우리 팀이나 회사 실적이 저조한 날에는 상담사별 후처리 시간(통화 사이에 상담내용을 기록하고 고객요청사항을 전산에 입력하는 10초가량의 시간)과 휴식시간 등도 단체 메신저에 공유해요. 후처리랑 휴식시간이 많은 상담사들은 이 시간을 줄이고 콜을 더 많이 받으라는 압박인 거죠."
유빈 : "저희 회사는 실적에 따라 팀별로 쓸 수 있는 연차 개수가 정해져 있어요. 그 정해져 있는 연차를 팀원들과 상의해서 나누어 써야 하는데, 신입사원이라 실적이 없는 2개월 동안은 모든 사람이 선택하고 남은 날에 쉬어야 했어요. 만약 20명인 팀에 한 달 연차가 6일 배당되면 6명만 쉴 수 있는 거예요. 나머지 14명이 양보를 하거나 서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이에요."
아정 : "팀 실적에 영향을 주니까 연차 쓸 때마다 눈치봐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통화량 때문에 절대 연차를 쓸 수 없는 날 같은 것도 정해져 있어서 불편했어요. 팀에서 영업실적이 부진한 사람들은 따로 또 단체 방을 만들어서 혼나기도 하고... 또 별도로 쉬는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중간에 화장실에 갈 때는 팀 단체 메신저에 화장실을 간다고 올려야 해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많이 불편했어요."
지미 : "맞아요. 이러다 방광염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팀원 중 1명이 화장실에 간다고 단체 방에 올리면 나머지는 그 사람이 복귀할 때까지 이석(자리를 비우는 것)할 수 없어요. 그 상담사가 복귀하더라도 내가 또 통화 중이면 갈 수가 없죠."
임금 인상 비롯해 기본적인 권리 보장 필요해
- 상담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요?
지미 : "한 달에 한 번은 조기퇴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실적이 높으면 30분 또는 1시간, 많게는 2시간까지 조기퇴근을 할 수 있는데 일찍 퇴근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목도 안 아프고.
또 기본급 자체가 올랐으면 좋겠어요. 해야 하는 업무가 정말 많은데 그 전문성과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적어요. 10만 원이라도 오르면 정말 기분 좋을 거 같은데요. 전문 선생님이 해주는 마음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 번 해봤는데 좋았어요. 선생님과의 상담도 좋지만 또래 상담사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센터라던지, 쉼터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친목도모하고, 저는 야구 좋아하는데 같이 야구도 보러 가면 재밌겠어요."
아정 : "돈!이요.(웃음) 교통비든 식비든 지원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어릴 때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서 정부에서 식비 지원 쿠폰을 줬었는데, 그런 쿠폰을 청년들에게 줘도 좋을 거 같고요."
유빈 : "야근을 하거나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건 다 수당으로 계산해서 주면 좋겠어요. 정당하게 일을 한 대가이니까요. 또 복지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중식비를 지원해준다거나 여성은 생리휴가, 남성은 예비군 다음 날 유급휴가 같은 걸 보장해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부산시가 지난 2월 27일 감정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노동자 휴게시설 설치 또는 개·보수, 휴게시설 내 비품과 녹음장비 등 감정노동자 보호 물품 구매에 드는 비용 일부 등을 지원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부산시의 소식을 접하니 씁쓸하다. 상담사들이 이미 존재하는 휴게시설을 사용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조건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될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이 부당한 무급노동과 과도한 영업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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