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6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14개 교수·학술단체가 모인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대해 “내용과 문장, 개념과 아이디어 등 모든 면에서 광범위하게 표절이 이루어졌다”고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유성호
지난 2022년 9월 6일 국민대학교의 최종판정을 전면 반박하는 국민검증단의 국민검증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건희씨의 논문이 단순한 표절을 넘어 점집 홈페이지와 해피 캠퍼스의 내용까지 짜깁기 한 것을 볼 때 대리 작성까지도 의심케 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국민대 동문이 본 김건희 논문 검증... 참 무책임하다 https://omn.kr/20ryg ).
이에 대해 국민대 측의 재반박을 기대했으나, 지금까지 한 마디의 유감 표명도 없이 묵묵부답이다. 자신들은 연장까지 해가면서 5개월 이상 소요한 조사를 겨우 4주 만에 마친 단체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국민대 측은 왜 대놓고 반박하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검증단은 김건희씨의 논문을 검증함에 있어서 무리한 해석을 동원해 표절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대의 3쪽짜리 최종 판정문에서, 소위 '봐주기'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은 카피킬러를 돌려 얻은 '표절률 7~17%'라는 수치다.
그에 비해 국민검증단은 표절과 복붙(복사+붙여넣기)의 거의 확실한 증거와 출처들을 참여 교수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찾아냈다. 90쪽에 가까운 국민검증 발표문의 문장 대부분이 누구의 논문을, 어느 점집의 홈페이지 글을, 모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출처 인용 없이 따왔다는 식으로 열거했다.
이건 논리와 논리가 맞붙은 게 아니고 사실이냐 아니냐의 다툼이다. 즉, 국민대가 이를 반박하려면 국민검증단 발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상대 주장이 오해라는 증거를 내놔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가 없으니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대 당국 못지않게 큰 연구윤리위의 책임
국민대는 관련해 변명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포기했다. 나는 이것을 국민검증에 대한 국민대 측의 백기투항이자, 사실상 검증 실패를 인정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로써 김건희씨 논문의 정체가 드러났다고 본다. 물론 의심스러운 학위로 얻은 과잉 이득을 인정하지 않는 김건희씨, 또 명백히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들을 간 크게 외면하는 국민대학교 측의 처신이 매우 불쾌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속한 국민대 동문 비대위는 학교 측과 김건희씨에게 책임은 계속 묻되, 향후 활동은 국민대 자체 논문검증의 전모를 밝혀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는 데 힘쓸 것이다.
앞서 김건희씨 논문 사태에 대한 국민대 학교당국의 태도와 판단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그래도 느긋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2020년대에 이르러 우리 사회가 확립해 놓은 연구윤리 준칙과 담당자들의 윤리 의식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누가 잡았는지에 상관없이 자체의 운용 원리와 힘으로 작동하는 독립성 말이다.
학계의 연구윤리 수준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성장과 비례하여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연구윤리 규정을 조금씩 수정하고 신설하면서 이만큼 발전시켜왔다. 한국 사회가 박사학위를 준 대학이 어디냐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박사라고 인정하듯이, 윤리위 역시 어떤 기관이 판정하느냐에 따라 공정성과 전문성에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거대한 구멍을 낸 것이 국민대 윤리위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전국의 대학과 학회에 속한 연구윤리 단체들은, 대한민국 연구윤리를 저잣거리 수준으로 끌어내린 국민대 윤리위의 이번 배신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논문검증 참사를 방관한 국민대 교수들에도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