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무토지농촌노동자운동(MST)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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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략센터(ISC): "MST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향력과 세력이 가장 큰 운동으로 알려져있다. 150만 민중을 기반으로 하며, 9만 가구가 MST 캠프에서 생활 중이고, 35만 가구가 농업 개혁 정착지에 정착했다. 이 운동은 1984년 브라질의 독재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MST의 토지 점거 운동은 모든 토지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의무화한 1988년 헌법에 의거한다. 무토지 농촌 노동자가 사유지를 점령하는 것은 매우 급진적이다. 하지만 MST는 35만 가구를 일할 수 있는 땅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급진적인 행동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나 차: "토지 점거는 MST의 주된 투쟁 중 하나이며, 사적 소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기 때문에 급진적이다. 브라질에서는 토지의 대부분을 소수가 소유하고 있어서 불평등이 심하다. 현재 토지소유자의 1%가 토지의 50%를 소유하고 있다. 80년대 농촌 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했을 때 사유지의 대부분은 유휴지였고, 농촌의 다수 노동자가 살 곳이 없었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 점거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토지 점거의 주요한 목표는 정부가 유휴지를 사회화해서 토지 개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토지 점거라는 급진적인 행동에 토지 소유주는 폭력으로 활동가를 탄압했다. 하지만 헌법에 '토지 소유는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토지가 생산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정부는 그 토지를 사회화해야 한다. 그래서 MST는 토지 점거 뿐만 아니라 행진과 집회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정부에 압력을 가해서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헌법에 의거하여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토지를 사회화 할 수 있었다. 급진적인 행동이지만 합법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다수의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SC: "법적으로 인정이 된다고 하지만 강한 저항이 있었다. 브라질 민중은 MST의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아나 차: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40년 넘게 민중의 지지에는 변화가 있었다. 활동 초기에는 우리의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토지를 점거한 주변 지역의 주민은 우리의 운동을 지지했다. 토지소유주를 제외하면 우리의 활동을 지지했는데, 불평등을 줄이고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토지를 주는 진보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 들어서는 우리의 운동이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무토지 농촌 노동자를 학살했던 사건이 TV에 방영되면서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물론 언론은 우리 활동을 범죄로 그리려 했지만 대다수의 민중은 우리를 지지했다.
지난 10-15년간 농산업이 성장하면서 국제금융자본이 대농장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국제자본이 운영하는 대농장은 수출 상품만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기능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또한, 국제자본은 언론을 통해 자본의 논리를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때문에 실제 진보적인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현재는 토지 점거 활동에 대중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활동가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있으면 민중은 반대하고 나선다. 최근 MST는 건강 식품의 생산, 친환경 농업 증진, 교육 개선, 도시 빈민과의 연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 활동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ISC: "노동자당(PT)이 집권했던 시기에 MST와 브라질 사회 운동에는 어떤 기회와 어려움이 있었는가? 과거의 경험이 룰라 3기 정부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MST는 강한 민중 기반이 있는데 정당을 만드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있는가?"
아나 차: "PT가 처음 집권했을 때 정부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PT정부는 사회운동의 의제에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와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었다. 물론 PT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농지의 사회화뿐만 아니라 식량, 에너지 주택 정책을 통해 농촌 개혁의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하지만 당시 PT정부는 사회적 화합이 주된 목표였기 때문에 대지주, 농기업의 지지도 받으려 했다. 그래서 농지 소유의 불평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현재 브라질에는 무토지 농민이 여전히 많다. 그 당시의 교훈은 MST의 활동에서 독립성과 자주성 유지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대중의 지지를 만들고 지속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MST는 토지뿐만 아니라 사회개혁 투쟁을 한다. 정당이 농민과 같은 한가지 부문의 정당이 될 수 없고 더 넓은 계급적 성격을 가진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선거시 정당과 연대하고 지지하고, 일상 시기에는 대중을 조직하고 연대를 통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한다."
ISC: "지난 10월 선거에서 MST는 당시 룰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표를 조직했으며 선거에 후보를 내기도 했다. 총 7000명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유권자를 동원했다. 또한 MST가 PT 후보로 출마한 15명 중 6명이 당선되었다. 선거 기간 인민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룰라 3기 정부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