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에 모인 주민들
월간 옥이네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
"혼자서 먹을 땐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어. 시골 늙은이들 집에 뭐가 있겠어. 김치나 짠지 같은 거나 있으면 다행이지. 우리 같은 노인들은 뭘 사러 돌아다닐 힘도, 영양 생각해서 챙겨 먹을 여력도 부족하잖아. 그러니 마을 급식소에서 급식한다고 하면 다 나오지. 이상하게 돌아다닐 힘은 없어도 다 같이 모여서 먹는다고 하면 힘이 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다 나와서 같이 먹고 그런다니까. 뭘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다 함께 모여서 먹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겨." (김월성씨, 85세)
"다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마을 간에는 화합이 우선이니까. 모여서 안부하고 사람들 얼굴 보고 그런 게 화합 아니겠어요? 마을 사람들 모이면 입에 들어가는 거 보기만 해도 배부른 느낌이 나요. 둘러앉아 먹고 얘기하고 놀고 그런 재미가 내 삶의 최고 재미예요. 지금이야 코로나19 때문에 여기(공유부엌)에서 잘 안 해먹긴 하지만요, 전에는 여기에 사람이 북적북적했어요. 마을이 살아난 것 같고 좋더라고. 이렇게 문 열었다 하면 여럿이 모여서 커피도 마시고 그러잖아요." (강희용씨, 81세)
군북면 대정리, 자연마을 대촌과 와정이 더해져 옛 이름 방아실로 알려진 이곳에 2020년 '백살공주의 공유부엌'이 들어섰다. 이정심 부녀회장이 방아실로 귀촌한 첫해, 주민들과 힘을 합쳐 도전한 충북농업기술원의 농촌 어르신 복지실천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지원받은 5천만 원의 사업비로 마을 창고를 개조해 공유부엌으로 조성한 것이다.
"우리 마을은요, 마을 크기는 어마어마한데 집들이 골짝골짝 숨어있어요. 대부분이 자연환경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보니 새로 이주해오는 사람들도 없어 어른들은 사람 보기 힘들다고 하시죠. 땅은 넓고 집들은 떨어져 있으니 작은 경로당이 여러 개, 함께 모여 식사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집들이 낡고 좁아 오랜만에 자녀들이 와도 식사하고 가기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요. 마음 편히 식사하고 갈 수 있으면서 평소에는 공동급식을 할 수 있도록 공유부엌을 조성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정심 부녀회장)
마을 어르신들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백살공주의 공유부엌'이라 이름을 붙였다. 식기와 집기를 비치하고, 식탁마다 가스버너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편히 이용하고 치우도록 시설도 마련했다.
"공유부엌에서 어르신들의 끼니를 마련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식사 당번이 정해졌어요. 골짝골짝 떨어져 있던 경로당에서 노인 일자리로 식사 준비하던 분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셨고요. 마을 주민들은 감자나 시금치 같은 것을 십시일반 나누어주셨죠. 저는 고기나 생선처럼 필요한 것들을 사다 날랐고요. 그렇게 풍성한 식단이 마련됐어요." (대정리 이정심 부녀회장)
공유부엌의 필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바쁜 농번기에는 식사 준비와 농사일을 병행하기 어렵고, 이전부터 대가 없이 몇몇 사람이 계속해서 노동해야만 하는 구조가 이정심 부녀회장의 눈에 밟혔던 것. 마을 어른들의 한 끼를 든든하게 마련하자는 취지에 이런 문제의식이 더해져 마을 어른들은 무료로, 식당을 찾는 이들에게는 5천 원씩 기금을 받아 뷔페 형식으로 운영을 결정했다.
함께 먹을수록 더 가까이 보이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