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쪄낸 대게
김혜원
그래서 정한 규칙이 바로 '일 년에 하루, 대게 여행'이었다.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대게 산지를 찾아 세 식구 모두 함께 오붓하게 대게를 먹으러 가는 여행이다. 여행이래 봤자 집을 나서서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 다음 대게를 먹고 돌아오는 것이 다이지만, 이 하루는 내게 너무 소중한 스케줄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어쩌면 긴~긴 겨울 없는 입맛으로 고생깨나 해가며 퀭한 눈과 움푹 파인 볼을 해 가지고도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고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대게 가격이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대게의 단맛이 저장된 기억의 어느 부분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사람, 참.
역시 박달대게였다. 한 마리에 16만 원이나 하는 이 무시무시한 녀석을 호기롭게 3마리 고른 후 남편은 "큰 거 한 마리 더 할래?"라는 말로 목소리에 힘을 주는 거였다. "아니, 그거 다 못 먹을 걸?"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대게라면 나도 '소식좌'가 아닌 '중식좌', 내지는 '대식좌'도 될 수 있다는 걸 남편도 익히 간파하고 있는 걸 알았음이다.
다른 음식으로 치환하자면 대게 다리 3개쯤에서 녹다운 돼야 할 먹부림이 몸통 부분으로 이어지고 게장으로 볶은밥 몇 숟갈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대게는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라는 아이의 환호가 이어지는 것도 모르고 나는 박달대게의 차진 살을 꼭꼭 씹으며 길~게 음미했다. 더불어 내년에는 이보다 좀 더 실한 대게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가불도 성급하게 했음이다.
최대한 적게 먹고, 건강하다 검증된 음식을 먹는 것이 내 식사의 기조이고 그래서 주변인들로부터 '소식좌'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는 하나, 그렇다고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가끔 과식을 해도 괜찮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횟수에는 제한을 둔다. 내 경우엔 일 년에 단 하루인데, 그런 재미마저 없다면 살아가는 게 너무 심심한 일 아닐까.
박달대게를 배불리 먹은 다음, 푸른 동해바다가 눈앞에서 넘실대는 해맞이 광장의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산책을 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 가족의 2월 중 행사가 됐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더욱 몽환적인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사이좋게 걸어가는 아이와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도 뭉근히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몰래 참아온 트림을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며, 이 단 하루의 행복이 보다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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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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