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뉴스페이스 시대 우주경제 개척자와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없는 것만 같다. 박약한 기억력 탓이라 믿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치학자인데 싶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희한하게도 '검찰총장' 윤석열만은 대단히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대통령이란 이미지가 한 번도 같이 겹쳐서 떠오른 적이 없어, 내 뇌 증세를 매우 걱정스럽게 여기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거론하는 구절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시청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하기야 윤 대통령의 경우처럼,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외투를 걸친 것처럼 대통령이나 정상 또는 국가원수란 용어와 개념이 이토록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례가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하도 오랜 세월 동안 그야말로 '압박과 설움'에 시달려왔던 탓인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거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치가 결코 만만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예컨대 중후한 인품이라든지 친근하고 자애로운 풍모, 그리고 곤경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보람찬 희망을 안겨줄 빛나는 정치적 경륜과 지혜, 넉넉한 믿음성 등등이 그 기대치의 목록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독히 낯설어 보인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라 그런지, 품위나 인자함 같은 덕목은 찾아보기 막막하고, 그 대신 무엇보다 두려움과 무서움부터 앞서기 일쑤다. 친밀감을 느끼기가 겨울에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기 짝이 없다.
그 때문일까,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지율이 고작 30% 위아래를 오갈 뿐이다. 뿐만 아니라 거의 당선되는 순간부터 퇴임하라느니 탄핵이니 하는 원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흔히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의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윤 대통령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 윤석열은 마르크스 주의자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첫째, 마르크스주의자인 것 같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 전문 연구자를 뺨칠 정도다.
당선인 시절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자주 피력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질의 응답 시간에 그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충격적인 철학을 개진하면서,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역설했다. 한마디로 그는 난해한 유물론 철학연구까지 몸소 완수한 심오한 철학자였던 것이다. 아마도 공산주의자는 결코 아니리라 짐작되기는 한다.
공산주의의 원조 마르크스(Marx)가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 원리를 자신의 기본입장으로 삼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윤 당선자가 바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외친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이구동성이다. 그는 마르크스 유물론의 핵심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집무실 용산 이전 구상에는 바로 이러한 심오한 철학적 토대가 튼튼히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제왕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느니,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를 선호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어 여론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막중한 과업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느니 하며 퍼붓는 숱한 비판들이 윤 대통령의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있었을까. 대통령이 이러한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처사다. 요컨대 대통령이 잘 못하는 건 추호도 없다, 모든 게 다 국민들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사과한 적 없는 무오류의 화신
이런 의미에서, 둘째로 윤 대통령은 교황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보다 교황이 절대 '무오류성'의 역사적 기림을 한 몸에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윤 대통령이 오류를 저지른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대통령으로서는 차마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언행을 수없이 되풀이했음에도, 여태껏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오류의 화신이니까.
이러한 무오류의 실증사례가 물론 넘칠 듯 많지만, 지면 관계상 아주 간략하게나마 시기순으로 잠시 정리해보도록 하자. 2022년 9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저지른 "날리면"-"바이든" 비속어 논란은 노벨상 수상자 이름만큼이나 이미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탓에, 더 이상 언급하는 게 송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무인기가 침투해 오랜 시간 동안 수도권을 제집 드나들 듯 한 가공할만한 사건에 대한 대응과정에서도 대통령은 당연히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사고 이후 대통령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 상황도 아니었고 열 필요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민이 공포에 떨든 말든 그건 전혀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국민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이어서 지난 1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이 아무 짝에도 쓸데없이 괜히 이란을 UAE의 '적'으로 만들어놓고는 표표히 귀국했다. 물론 대통령실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대통령의 눈물겨운 애국적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처럼 얼렁뚱땅 해명하고는 세계정치사에도 길이 남을 명연설임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넘어 가버리고 만 것이다. 윤 대통령처럼 고매한 철학자가 품위 없게 그런 시시한 말실수 같은 걸 하실 분인가.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파 두 번 다시 되뇌고 싶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어야 할 듯하다. 수많은 아까운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를 보며,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가슴을 치며 통탄했을까. 그럼에도 수수방관만 하고서는 여태껏 제대로 된 공식 사과 한 마디조차 없다. 응당 대통령이 잘 못 한 게 털끝만큼도 없음은 물론이다. 교황이 어찌 그런 억장이 무너지는 실수를 저지를 리 있겠는가.
하지만 그토록 짧은 재임기간 중에, 대통령 스스로 그토록 수많은 과오와 잘못을 저질렀으나 단 한번도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었다는 사실이 어찌 역대급 아닐 수 있으리요. 그런데 이와 같은 단군이래 최초의 흑역사가 이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검사들의 직업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