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지난 10일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 가족들과 함께 대구시립묘지에 묻혀 있는 무연고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조정훈
윤 이사는 다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지난 2009년 10월 27일 새벽 3시 대구시립추모의집에 안치돼 있던 32명의 골분을 한지에 싸서 팔공산에 있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전상징 조형물 인근에 묻었다. 대구시와 '안전테마파크에 유골을 모시자'는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것.
그는 "대구시와 대책위가 추모탑을 실질적인 위령탑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안전테마파크 주변 상인들이 추모탑 건립과 유골 안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병규 부시장과 윤석기 위원장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거짓 기자회견을 했다. 추모탑을 추진하기 위해 극비리에 보안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를 상징해 심은 192그루의 나무 가운데 고사목이 생겼고, 재식재를 한다는 명분으로 대구시가 미리 이들을 묻을 곳을 파두었다. 안전테마파크 담당자도 CCTV를 다른 쪽으로 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1년 후 대구시에 암매장 투서가 날아들었다. 시는 '암매장 사건을 조사해 달라'며 대구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구지검은 윤석기 희생자대책위 위원장과 황순오 전 사무국장을 유골 암매장 혐의로 기소했다. 2년이 넘는 법정 공방 끝에 2013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윤 이사는 "대구시는 희생자대책위와 이면합의를 했는데 결국 모르는 체했다. 도덕과 양심이 없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지은이가 '아빠, 컴퓨터 하나 사서 배우세요' 했어요. 그때는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사고 후 중앙로역에 조해녕 시장과 윤진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논란이 된 적 있어요. 자기들은 없었다고 발뺌하고 거짓말하는데 당시 MBC 뉴스에 두 사람이 나온 사진이 보도된 게 있었어요. 그때부터 결심했어요."
윤 이사는 딸이 사망한 후부터 사고 현장과 대구시 등과의 면담, 희생자대책위 활동 등을 사진과 영상, 녹음으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벌써 20년째다. 그는 디카(디지털카메라)와 녹음기, 캠코더를 사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녹음했다.
대구시와 싸우면서 누군가 기록을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는 희생자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록할 수 있게 된 게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CD에 저장하고 인터넷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그동안 컴퓨터도 몇 번 바꿨다. 그러다 외장하드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중복되고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지만 지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조금씩 정리해가며 날짜별, 목록별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내기도 했다. 암매장 사건으로 대법원까지 갔을 때 그가 기록한 동영상과 녹음파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윤 이사는 "내가 담아둔 기록을 통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보며 퇴보 느껴... 국가가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