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와 어머니 박순정씨가 지난해 9월 29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성추행한 가해자(부대 선임)에 대해 징역 7년형이 확정되자, ‘허위 사과를 가장한 보복성 문자를 군사법원이 증거불충분으로 면죄부 준 것을 대법원이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며 ’법이 피해자에게 너무 차가운 잣대를 들이댔고, 가해자에게는 너무 따뜻했다’고 분노했다.
권우성
[기사 수정 : 15일 오전 11시 32분]
지난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
고요하던 법정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씨가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중사를 성추행한 피고인 장아무개(당시 중사)씨의 2차가해 범죄(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 정진아 부장판사)이 판결 내용을 전하던 중이었다.
"피해자(이 중사)가 감내하기 어려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으로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해자인 피고인(장씨)이 진지하게 자숙하는 태도로 임하기만 했더라도 (이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와 같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재판장은 이 중사가 겪었을 고통을 언급하며 2차가해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했고 박씨는 긴 탄식을 내뱉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애써 화를 억누르던 박씨였지만 결국 스스로 머리를 내리치며 가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현장에 함께 자리한 다른 군 사망사건 유족들이 황급히 박씨 손을 붙잡으며 안정을 유도하는 한편, 박씨를 대신해 판결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피고인 주장 중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아
"피고인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한다. 주문. 피고인 징역 1년."
재판부는 앞서 징역 7년이 확정된 성추행 범죄(군인등강제추행치상)와 이날 선고한 2차가해 범죄(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를 경합범으로 인정하는 등 감형 사유가 있음에도 비교적 엄한 처벌을 택했다. 아직 1심 판결이긴 하지만 장씨의 형량은 징역 8년(7년+1년)으로 늘었다.
"그 불법성이 매우 크다."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재판부는 장씨의 2차가해 범죄를 강하게 지탄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설명을 부연했다.
"피해자의 성정이나 행동을 왜곡해 퍼뜨리는 행위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해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으로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2차가해이다."
"피고인의 말은 군대 조직의 특수성, 남성 중심의 인적 구성과 계급문화, 공동생활에 근거한 밀착성·폐쇄성과 결합해 빠른 속도로 전파됐고 피해자는 중대한 피해를 당했어도 거대한 조직 안에 홀로 고립되고 말았다."
그동안 공판에서 장씨 측은 자신의 말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기소한 장씨의 2차가해 발언은 그가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 후 한 발언이다. 장씨는 군인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신고를 당했다" "선배님들도 여군 조심하시라"(이상 A·B를 상대로 한 말), "받아주니까 했다"(C를 상대로 한 말)고 말했다.
장씨 측은 '변명 또는 의견에 불과하고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공연성도 없고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제3자에게 전파하지도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장씨의 주장 중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