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코인
고정미
끝모를 추락을 거듭하던 가상자산 시장에 정부발 '호재'가 떴다. 금융당국이 앞으로 사업자들이 디지털 자산인 토큰 형태로 증권을 발행해(토큰증권) 투자자들로부터 손쉽게 투자를 받도록 하겠다며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의 가장 큰 적은 불확실성이었다. 정부가 가상자산에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을 정해두지 않았던 탓에 이용자 입장에선 토큰 사업자가 거래소에서 오고가는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가치가 폭락했고 이용자 손실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는 증권성 있는 토큰은 제도권 내에서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게 될 전망이다. 직간접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생겨난 셈이다.
그런데 일각에선 이번 가이드라인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 이미 상장돼 있는 토큰들의 '집단 상장폐지(상폐)'를 부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토큰증권을 허용하는 대신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된 증권 성격의 토큰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이로 인해 '증권성 있는 토큰이 무엇인지'와 관련해 이용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토큰이 '증권'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먼저 지난 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을 살펴보자. 금융위는 가상자산을 증권인 디지털자산과 증권이 아닌 디지털자산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투자자가 토큰 거래로 얻게 되는 권리가 증권에 해당한다면 그 형태가 토큰일지라도 앞으로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하겠다고 결론지었다. 내용물이 증권이라면 내용물을 담고 있는 그릇이 토큰이어도 증권이라는 논리다.
증권이란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피할 목적으로 어느 시점에 돈이나 재산적 가치 있는 것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취득하는 권리다.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된 토큰이 '증권' 판단을 받으면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아 투자자를 위한 공시, 보호 의무를 지게 된다. 시세조종이나 가격 조작 등 처벌 규제도 따라야 한다. 또 더이상 가상자산거래소가 아닌 한국거래소의 관할 아래 놓인다.
그렇다 보니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먼저 상장폐지 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토큰 가치가 크게 오르내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일 금융위는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와 만나 '토큰 증권'에 해당하는 토큰을 상장폐지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가진 토큰도 투자계약증권?
그런데 법적으로 증권은 인정 범위가 넓은 편이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종류는 채무증권·지분증권·수익증권·투자계약증권·파생결합증권·증권예탁증권 등 총 6가지다.
그중에서도 투자계약증권은 투자자가 이익을 얻거나 손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타인과의 공동 사업에 금전을 투자해, 주로 타인이 수행한 사업 결과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계약상의 권리를 뜻한다. 쉽게 말해 사업자가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사업을 수행하고 그 수행에 따라 투자자의 이익·손실이 결정되는 투자계약증권이다.
애당초 투자계약증권이 생겨난 건 '포괄주의 규제원칙'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증권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규제의 사각지대가 생겨날 것을 우려해 만들어진 넓은 개념인 셈.
또 지난해 금융위는 사실상 처음으로 '투자계약증권'을 인정해 증권성 판단을 내렸다. 시장에 많은 유동성이 풀렸을 때 투자자들에게 주목 받았던 뮤직카우 등 '조각투자'가 투자계약증권이라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각투자란 저작권이나 미술품 등 투자자가 원본을 나눠 갖기 힘든 대상에 대해 청구권만 조각처럼 쪼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형태다.
당시 금융위는 "투자자의 수익에 사업자의 전문성이나 사업 활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투자계약증권이 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밝혔다.
"비트코인·도지코인 빼면 증권 아닌 코인 없다"
그런데 법적 정의만 놓고 보면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된 수많은 토큰 중 증권 아닌 토큰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대부분의 토큰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수행할 사업 관련 설명서격인 '백서'를 내놓고 해외에서 가상화폐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거쳐 투자금을 모집한다. 이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해 국내 투자자들로부터도 투자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애초에 백서를 통해 사업 내용을 설명해 투자금을 유치하고 사업자의 사업 운영에 따라 토큰 가치가 오르내린다는 점에서 투자계약증권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보자. '파워렛저(Powerledger)'는 지난 2016년 호주에서 설립된 개인간 에너지 교환 플랫폼이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투자 물결에 올라타 자체 개발한 토큰,Powerledger(POWR)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앞서 파워렛저 사업자는 백서를 통해 '파워렛저는 2016년 세계 최초의 에너지 블록체인 기업들 중 하나로 설립되어 블록체인 기반 에너지 플랫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홍보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POWR가 '플랫폼을 지탱하는 큰 힘'이라며 '파워렛저 플랫폼의 이용 권한과 보상 용도로 사용된다'고 명시했다. 게다가 POWR는 업비트와 빗썸을 포함한 전 세계 57개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돼 지금도 실시간으로 거래되고 있다.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7월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를 내부 거래자 혐의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파워렛저를 포함한 9개 토큰을 증권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디지털 자산 전문가인 예자선 변호사는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된 토큰 중에 비트코인, 도지코인 등 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증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비트코인은 개발자가 소량만 먼저 발행한 뒤 나머진 채굴을 통해 참여자들이 블록을 주고받게 하는 등 탈중앙화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도지코인은 개발자가 재미로 만들어 운영 성과가 토큰의 가치와 무관했기 때문"이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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