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담당 안미영 특검(가운데)이 지난해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희훈
앞선 공판에서 장씨에게 징역 2년(명예훼손 혐의)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특검은 "피고인(장씨)이 범행 후 주변에 자신이 억울하게 신고 당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범행 내용을 축소·은폐하고자 이뤄진 이 행위는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강조했다.
유족 측도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받아 "부대에서 이 중사의 피해 사실이 유포되고 직속상관들이 합의를 종용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피고인의 발언"이라며 "엄벌에 처해달라"고 요청했다.
장씨 측은 "황망한 심정이고 피해자에게도 죄송한 마음"이라면서도 "사석에서 변명조로 한 이야기가 침소봉대돼 억울한 점이 있다. 어리석은 변명이었지만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장씨의 발언이 피해자를 특정한 허위사실이며 불특정 또는 다수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판결했다. 또한 장씨의 행위가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짚었다.
정진아 부장판사는 "성범죄 사건에서는 통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된다. 피해자의 성정이나 행동을 왜곡해 퍼뜨리는 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해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2차 가해"라고 밝혔다.
이어 "조직 특수성, 남성 중심의 인적구성과 계급문화, 공동생활에 근거한 폐쇄성 등을 고려할 때 (장씨의) 각 발언으로 인해 중대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거대한 조직 안에 홀로 고립됐다"라며 "(장씨는) 기강 확립이 필요한 군부대에서 같은 부대원을 추행했고 오히려 사실관계를 왜곡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가해자, 피해자 고립되게 해... 피해자에 저지르는 명예훼손은 불법성 크다"
이에 더해 "(장씨의) 발언 상대방들은 피고인(장씨)이 설명하는 편향된 내용만 듣고 피고인을 돕고자 탄원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고, 노◯◯(발언을 들은 또 다른 인물)가 합의를 종용한 것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중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며 "(피해자 이 중사가) 근무했던 부대는 물론 전보된 부대에까지 (성추행 사실이) 왜곡 전파돼, 남성 중심의 군사조직 내에서 근무하던 피해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꼈을 거라고 능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지르는 명예훼손은 불법성이 매우 크다"라며 "가해자인 피고인이 진지하게 자숙했다면 이와 같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라며 덧붙였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부사관이던 장씨는 2021년 3월 같은 부대 소속 이 중사를 성추행했다. 이 중사는 부대에 여러 차례 이를 신고했으나 2차 가해 및 은폐·무마·회유 시도가 이어졌고 같은 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공분이 일자 국방부는 직접 이 사건을 수사하기로 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10월 장씨를 비롯해 15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초동 수사 담당자 및 지휘부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비판이 쏟아졌다.
유족을 중심으로 특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4월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후 6월부터 약 3개월 간 수사를 진행한 특검은 장씨 외에도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등 6명을 기소했다. 6명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