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현지시각 4일 (현지시각) 런던 한식당에서 토마스 오웬 베델 손자 내외 2명을 만나 위문하고 2022년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한 베델 기념우표집을 전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베델의 동상이 그의 고국에 건립된다는 소식이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정부는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베델의 동상 건립을 그의 고향인 브리스틀에 추진하고 있다. 브리스틀시에 건립의사를 전하는 동시에 베델의 손자 등 후손을 찾고 생가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세부 작업이 진행 중이다.
베델은 1904년 러일전쟁 취재 차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 대한제국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베델은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의 야욕을 고발하고 억눌린 한국인 입장을 대변했다.
또한 베델은 대한매일신보 사장으로서 민족지도자들을 신문사 주간으로 영입해 한민족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많이 실었다. <코리아데일리> 뉴스를 통해서도 일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등 항일운동을 지원했다.
특히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대해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에 깊이 고무된 베델이 이를 찬양하는 기사를 대한매일신보에 싣고 호외까지 발행하며 일본을 규탄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일본은 한국을 옹호하는 베델을 탄압하고 영국에 그의 추방을 요구하는 등 소송을 걸자 배델은 여러 번 재판을 받고 6개월 근신형과 3주간의 금고형을 상하이에서 살기도 했다. 이후 그는 다시 서울로 왔지만 옥고를 치르면서 얻은 병으로 1909년 5월 1일 37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고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경천사십층석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로비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개풍군 실향민들은 설과 추석 등 명절 때 석탑을 찾아 향수를 달래고 있다. 경천사탑을 고향의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천사탑은 개풍군민들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는 것처럼 귀향의 숙제를 안고 있다. 경천사탑 본래 위치가 미수복개풍군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문화재 공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자 순리이다.
베델은 개풍군민에게 할아버지 조상
사후 114년만에 영국 고향에 베델 동상 건립이 추진된다니 개풍군민인 나도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경천사탑의 특별한 인연을 생각할 때 베델은 우리와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개풍군민에게 할아버지 조상이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동상이 영국에 건립되는 것은 처음이라 한다. 기회가 된다면 개풍군민들은 베델의 후손들과도 교류하고 동상건립에 작지만 뜻을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1950년 정부는 베델의 공훈을 인정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10년 장지연이 쓴 베델의 묘비에는 "나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길이 살아 한국동포를 구하기를 바란다"는 베델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 그의 유지대로 대한민국은 그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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