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성 천수각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곳곳에 펜스가 촘촘하게 설치돼있는 데다 안전요원들까지 근무하고 있어 관람객들은 동선을 한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다.
서부원
그때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 건, 여전히 복구 중인 구마모토성의 모습을 보고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마모토성은 2016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성벽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내렸고, 성곽 내 여러 목조 건물이 뒤틀렸다. 곳곳에 지지대를 세우고 방수포를 덮어씌운 채 관람객을 맞고 있는 상태다.
햇수로 7년이면 복구가 마무리됐을 법도 하건만, 그들은 관람 동선을 따라 가설물을 따로 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철제 트러스(TRUSS) 구조로, 몸이 불편한 관람객을 위해 승강기까지 설치해놓았다. 복구가 완료되면 철거할 테지만, 임시방편이라고 하기에는 적잖은 공력이 느껴진다.
성곽 곳곳에 둘러쳐진 펜스도 눈에 띈다. 아무리 짓궂은 관람객이라도 동선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게 돼 있다. 그냥 출입 금지 팻말과 관람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만 세워놓아도 괜찮을 성싶은 곳까지 강아지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그 정도로도 안심이 안 됐던지, 관람 동선 곳곳에 안전 요원이 배치되어 있다. 성 맨 꼭대기의 5층짜리 천수각 안에도 여러 명이 근무 중이다. 경사가 급한 나무 계단 옆에서조차 연신 조심하라며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안전사고가 나려야 날 수 없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지금 구마모토성 최대의 볼거리는 철옹성 같은 성벽도, 화려한 천수각도, 가토 기요마사의 신사도, 나아가 근대 일본을 열어젖힌 세이난 전쟁의 역사도 아닌, 관람객의 안전을 최우선에 둔 지방정부의 노력이다. 입장료 800엔(한화 약 76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일본인의 안전에 대한 강박은 실상 타인을 향한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일본인들은 태어나 부모에게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이가 거의 없는 이유다.
그들은 '아리가또(감사합니다)'와 '쓰미마셍(죄송합니다)'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말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건 만나보면 안다. 배려심이 몸에 배어 있는 데다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이 곧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여행 중에 만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사실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 일도 아닐뿐더러 언뜻 사소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선 작은 것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왜 일본을 두고 '디테일에 강한 나라'라는 찬사를 보내는지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