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에서 타테노에 이르는 텅 빈 기차의 객실 내부. 정복 입은 승무원의 안내방송만 요란하다.
서부원
알다시피,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다. 최근 코로나로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엔저 현상까지 겹치면서 그러잖아도 한국인 관광객 천지였던 일본이 대세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사실상 중국으로의 여행이 봉쇄된 덕도 컸다.
그런 일본에서 외진 섬이 아니고서야 외딴곳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나름 세워놓은 기준을 대입해 보았다. 가깝지만 찾아가기 불편한 곳, 자동차와 사람들 시끌벅적한 소리보다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 잿빛 콘크리트가 초록빛에 뒤덮인 시골, 무엇보다 우리 말을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는 곳이면 제격이었다.
그렇게 낙점된 휴가지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본 섬 큐슈였고, 큐슈에서도 오지라는 아소산 중턱의 조용한 온천 마을 미나미아소였다. 큐슈 중심 도시인 후쿠오카에서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더구나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끊긴 철도와 도로가 아직 다 복구되지도 않았다.
가깝지만 복잡한 여정을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지하철로 하카타 기차역으로 간 다음, 신칸센을 이용해 구마모토에 도착한다. 구마모토 기차역에서 오이타나 벳푸행 기차로 갈아탄 후 타테노 역에서 내린다. 그곳에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2시간 남짓이면 족할 가까운 거리다. 다만 갈아타기가 번거롭고 기차와 버스 시간이 연동되지 않아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그만큼 여느 곳에 견줘 찾는 외지 관광객이 드물다는 뜻이고, 굳이 가자면 구마모토 등에서 렌터카를 이용해야 할 성싶다.
큐슈 여행의 기점인 후쿠오카의 하카타 기차역은, 조금 과장한다면, 마주치는 사람 열에 서넛은 한국인 관광객일 정도로 북적인다. 그래선지 기차역 곳곳에 물품 보관함이 즐비하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모든 서비스에 한국어가 지원돼 의사소통의 불편함은 전혀 없다.
'한국보다 더 한국 같은' 후쿠오카와 가토 기요마사의 성곽 유적으로 유명한 구마모토를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평일이라선지 한국인은커녕 캐리어를 끌거나 배낭 차림을 한 일본인 관광객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기차에 손님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구마모토 기차역에서 공항이 있는 히고오즈까지는 직장인과 현지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히 타고 내렸지만, 이후로는 객차 한 량에 승객은 고작 몇 명뿐이었다. 언뜻 나만을 위한 전용 열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복 차림의 승무원은 텅 빈 객실을 향해 쉼 없이 안내방송을 했다.
인적 드문데... 기차역 새로 짓는 이유
기차는 달랑 두 량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승객이 적어서 줄였는지 알 수 없지만, 레일만 없다면 두 대를 이어붙인 기다란 굴절 버스처럼 보인다. 레일의 간격이 우리보다 좁아선지 밖에서 보면 흡사 장난감 같기도 하다.
타테노 역에서 내린 사람 역시 나뿐이었다. 역 주변은 썰렁하다 못해 황량했다. 툭 차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플랫폼 위에 매표기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미나미아소로 가는 철길은 여기서부터 끊겨 있다. 한창 복구 중이라지만, 주변 상황을 보건대 하세월일 듯싶다.
미나미아소란 아소산 남쪽이라는 뜻이다. 7년 전 대지진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군데군데 잘린 아스팔트 도로와 무너진 다리들이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지금은 족히 100m는 돼 보이는 협곡 위로 새 다리가 지어져 고립된 주변 마을들을 이어주고 있다.
타테노에서 종착역인 오이타나 벳푸로 가려면, 기차의 앞뒤 방향을 바꿔야 한다. 여기서부터 이른바 '스위치백' 구간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기 위해 지그재그로 철길이 놓여 있어, 그것만으로도 색다른 체험이다.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삼척과 도계 사이 철길 구간에 남아 있다.
역 바로 앞이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이 없다면, 그곳이 버스 정류장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주변엔 메이지 일왕 재위 시절 창립됐다는 만둣가게 하나뿐이다. 그나마 그 광고 문구가 아니었다면, 그곳이 식당인지 일반 가정집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마을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역에서 내린 사람이 나뿐이니, 아마 마을버스에 타는 사람도 나뿐일 것이다. 언뜻 보니 기차가 다니는 횟수보다 버스 시간의 간격이 더 넓은 듯하다. 철길이 끊기지 않았다면, 숙소 근처 역까지 기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하릴없이 타테노 역 주변 마을을 서성였다. 폐교한 지 꽤 돼 보이는 소학교 건물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과연 지금 사람이 사나 싶은 낡은 집들이 비탈진 산등성이에 늘어서 있고, 그 아래 새뜻한 도로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간이 휴게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