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김지영
초등학교 앞, 오래된 문구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코팅과 복사도 해주는, 역사가 오래된 듯한 가게입니다. 조심스럽게 문구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들어서자마자 박스 채로 바닥에 늘어선 장난감들이 보입니다.
고철에 회색칠을 한 선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위에 문구류며 학용품들이 사람의 손을 탄 후 어지러워진 채로 놓여있습니다. 기대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옵니다.
문득 문방구 탐색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지도 앱에 '문방구'를 검색해 보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문구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주택 골목을 구불구불 걸어 또 다른 문구점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기쁜 마음도 잠시, 생기를 잃은 듯 낡고 오래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문구점은 구도심의 상가 건물들 뒤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근처엔 동네 시장도 있어 예전엔 제법 번화가 역할을 했을 듯한데, 지금은 인적조차 줄어든 모습입니다.
고개를 돌려 골목의 끝에서 아이들이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이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문구점을 들락날락하며 골목 전체를 놀이터 삼아 놀았겠지요. 지난날의 영광을 품고 있는 문구점을 찬찬히, 눈에 담아 봅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그야말로 보물섬이었습니다. 문구용품, 장난감, 화방용품, 군것질 거리까지 어린이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문방구에 있는 것만 같았지요. 슈퍼마켓집 딸, 빵집 딸 다음으로 되고 싶은 것이 문방구집 딸이었어요.
이 무궁무진한 보물섬의 세계에 매일 머무를 수 있다니. 알록달록한 물감과 공주 인형, 각종 놀이용품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다니, 세상 부러운 사람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마, 문방구집 딸의 사정은 저의 짐작과는 조금 달랐겠지만요.
문방구 사장님은 학교 선생님 다음으로 아는 게 제일 많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사러 가면 그게 무엇이든 척척 가져다주시는 것이, 세상에서 사장님이 모르는 물건이란 없는 것 같았어요. 문방구는 놀이터이면서 아지트 때론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었지요.
이제 문방구는 프랜차이즈 생활용품점이나 무인 문구점, 혹은 디자인 문구점으로 대체되는 것 같습니다. 추억의 문방구는 이제 문구 거리나 관광지의 상점 정도로만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듯 보입니다.
문방구가 사라진다고 삶의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정취를 아이들이 더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동심을 애써 지워가며 숙제처럼 매일을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매일이 즐거운 놀이로 가득했던 축제 같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수업이 끝나고 열기가 식어버린 난로 앞에 친구들과 모여, 다른 반 아이들과의 고무줄 시합을 기다리던 설렘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