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날짜를 받고 반가우면서도 지금껏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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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면서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애들을 만나 기뻐하던 모습과 달리 약간 어두워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 쌍 같다고 내 느낌을 말했다. 솔직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아내 반응은 어딘가 시큰둥하다. 자신의 품을 떠나는 아들이 못내 서운한 듯 보였다.
아내는 둘 중에 누가 더 사랑하는 것 같냐는 요상한 질문도 던졌다. 유심히 살피지 않아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고는 입장을 말했다. "아들이 자기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보기 좋고 또 그게 바람직한 부부상이라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닥 반가워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아내의 섭섭한 감정을 제쳐두고 아들이 짝을 만나 결혼까지 목전에 왔다는 사실에 더 흥분하고 있었다.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아내가 느끼는 감정은 딸을 멀리 시집보내는 아버지 심정과 흡사하리라.
그리고 얼마 후 둘째가 할아버지께도 직접 인사드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들었다. 평소 할아버지와 손자의 살가운 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제안이다. 우리는 일단 할아버지께 전화드리고 추진하라 일렀다. 그 만남에 우리는 참석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사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손자 결혼 상대가 누구고 결혼 날짜까지 잡은 것을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았다. 좀 더 추이를 지켜보고 차차 말씀드리려던 참이었다.
둘째가 애인을 할아버지께 자랑도 할 겸 별도 소개할 자리를 마련하다니 기특하면서 내심 부끄러웠다. 결혼 준비를 지켜보며 94세 할아버지 인사는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들이 나보다 더 듬직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관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만나기 싫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인사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인사를 따로 안 받겠다는 것이다. 둘째로서는 예상 밖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내도 아버지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왜 그러실까' 혹시 어디 불편한 데가 있어 그러시는지 궁금했다.
사태가 이러니 아들이 연락을 했다.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자기 말이면 모든 걸 들어주는데 왜 자리를 피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설득하려는데 막무가내라며 혹시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내가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와 독대했다. 먼저 손자 제안에 반대했는지 조심스레 여쭈었다. 역시 반대 의사가 분명했다. 귀먹고 눈도 안 보이는 늙은이가 가서 뭐 하겠냐며 간다면 손자에게 누가 될까 거절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아버지 입장을 수용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조용히 말씀드렸다. "결혼을 앞두고 할아버지까지 챙기는 손자를 되레 칭찬하고 격려해주셔야 한다." 결국 아버지는 내 말에 수긍했다. 둘째에게도 '우리 함께 보자'고 전화까지 했다.
하여 둘째와 할아버지 만남은 기쁘게 성사됐다. 어떻게 할아버지를 설득했는지 궁금해하는 아들에게 나는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해 낯선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아 거절했을 뿐, 살아 계실 때까지 지금처럼 집안 최고 어르신으로 모셔달라 당부했다.
아들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가족의 변화된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다. 결혼한 자녀에게 과거와 같이 가족의 연대를 강요하거나 효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자녀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부모 봉양 시대는 우리 세대로 끝이 날 거다.
나는 '동물의 왕국'에서 특히 어린 새끼들이 독립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 비유가 지나칠지 모르지만 동물의 세계가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반추하는 나이에 그만 말이 많았다. 우리 자식들이 결혼을 통해 간섭 없이 스스로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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