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타야의 왓 프라스리산펫
Widerstand
원래 지금의 태국 땅은 주로 크메르인이 살던 곳이었고, 태국인은 지금의 중국 영토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운남성 인근에서 거주하던 태국인은 8-10세기 무렵부터 서서히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넘어왔죠. 1253년 운남성에 있던 왕국인 대리국이 몽골에 의해 멸망하면서 태국인은 대거 동남아시아로 이주합니다.
그렇게 남하해 태국인이 자리잡은 중심지가 수코타이였습니다. 여기서 수코타이 왕국을 개창했죠. 이것이 1238년의 일이었습니다. 수코타이는 곧 람캄행 왕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지금의 태국 중북부 지역을 대부분 장악했습니다. 태국 문자의 원형도 이 시기에 확립됩니다. 중국 측 기록에서는 태국을 '섬라(暹羅)'라고 칭하는데, 이 가운데 '섬(暹)'이 수코타이를 의미한다고 하죠.
물론 여기서 '장악'이나 '지배'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수코타이 왕국이 직할 통치하는 범위는 수코타이라는 도시 뿐이었습니다. 다른 도시와는 해당 도시의 지배자와 후원-피후원 관계를 맺어 간접적으로 통치했죠. 이 관계는 상당히 유동적이고, 때로 중첩적이기도 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전통적 국가체제인 '만달라적 정치체제'의 전형입니다.
이러한 '만달라적 정치체제'는 도시와 도시 사이의 정치적 관계보다는, 수코타이라는 도시의 지배자와 다른 도시의 지배자 사이 개인적 관계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사라지면 쉽게 붕괴하는 경향이 있지요. 수코타이도 그랬습니다. 람캄행 왕이 사망한 뒤 수코타이 왕국도 빠르게 몰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