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잔금을 치른 뒤 별탈없이 살아가던 김씨 부부가 전세금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2022년 6월 해당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고도 한 달이 지나서였다.
김태현
해당 이행각서는 법적 효력을 지닌 서류다. 다만, 실제 주택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의 전세금을 감당할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라면 실질적 효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석호 공인중개사는 1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사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이행각서를 이용해 공인중개사의 재산을 압류해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실질적인 효력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공인중개사들이 이행각서를 써줄 당시 전세금을 반환해줄 경제적 여력이 있었다면 사기로 보기 어렵겠지만, 당시 아무런 재산도 없었다면 명확한 사기"라고 설명했다.
2019년 4월, 잔금을 치른 뒤 별탈없이 살아가던 김씨 부부가 전세금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은 2022년 6월 해당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고도 한 달이 지난 때였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집집마다 법률사무소에서 보낸 똑같은 우편물이 꽂혀있었다"며 "갑자기 왜 이런 게 왔나 해서 봤더니,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내용과 사건번호들이 적혀있었다"고 했다. 전세금을 돌려받으려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니, 그때 자신들을 써달라는 취지의 영업용 우편이었다.
놀란 김씨 부부는 전세 계약을 진행했던 공인중개사를 찾았지만, 또 다시 "걱정 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씨는 "부동산에선 '별일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정씨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알게 됐는데, 저희는 한 푼도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경매로 넘어간 집을 누군가 낙찰받더라도, 은행에서 (임대인의 빚) 1억4000만 원을 모두 가져간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낙찰가가 대폭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 김씨 부부가 이에 참여하더라도 전세금을 보전받기 어렵고, 여기에 임대인의 기존 채무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자영업자인 김씨가 추가 대출을 받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대출을 받더라도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집을 구입해야 하는 구조다. 정씨의 말이다.
"당장 오는 4월에 전세대출 6400만 원을 상환해야 돼요. 만약에 제가 그걸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하더군요. 법률구조공단에선 개인회생을 알아보라는데, 지금은 제가 직장을 그만뒀거든요. 아이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분은 '이혼을 해라'라고도 하던데, 그러기엔 아이가 있잖아요. 저희가 갚아야 할 돈이 아닌데, 저희 빚이 돼버렸어요. 개인회생을 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더 살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혼란스러워하는 김씨 부부에게 공인중개사는 전세금을 높여 재계약할 것을 권했다. 김씨는 "집이 경매 넘어간 뒤 부동산에선 액수를 높여 다시 계약하라고 했다. 보증보험 가입도 가능하다면서 안심시켰다"며 "그때는 그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뉴스를 보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제는 거의 다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임대 사기 고소... 경찰 묵묵부답
14층 총 2개 동인 해당 주택에 거주 중인 세입자 가운데 100여명이 김씨 부부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다.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아파트형 빌라 B, C 등도 마찬가지다. 김씨 부부의 전세계약을 맡아 이행각서까지 써 준 공인중개사의 휴대전화번호는 현재 '없는 번호'가 됐고, 공인중개사사무소도 폐업했다. 김씨는 "저희가 갔던 부동산은 2~3달 전에 사라졌다"며 "근처 부동산 5군데가 다 그런 상태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김씨 부부에게는 이 집을 안전하게 벗어날 기회는 있었다. 지난 2021년 4월, 재계약 시점이다. 김씨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2000만 원 올려달라고 해서 난감했다. 법적으론 5%까지 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내가 거의 만삭일 때여서 이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사정을 설명했고, 1500만 원 증액으로 재계약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이후 전세금 9500만 원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공인중개사의 이행각서를 믿었던 탓이다.
부부에게 전셋집과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소개해준 직장 동료의 전셋집도 경매로 넘어간 상황이다. 정씨 친구가 전세로 살고 있던 신축 빌라도 경매로 넘어갔다. 인천 미추홀구 곳곳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지난해 7월 김씨 부부는 임대인 양씨를 사기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김씨의 말이다.
"처음에는 막 열불나고 화도 났는데, 점점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방법이 없으니까요. 원래는 차곡차곡 모아서 집도 사고 그러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요. 아무래도 작은 집, 월세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만 이런 게 아닌데, 이런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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