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문해서 먹는 못난이 유기농, 무농약 채소들.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런 채소들이 부지기수로 버려진다.
이준수
음식이 버려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식판에 받은 급식이 맛이 없어서 혹은 양이 많아서 버릴 수 있다. 또는 김밥이 쉬어서 버릴 수도 있다. 곰팡이가 핀 고구마도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진심으로 안타까운 것은 단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일괄 버려지는 깨끗한 음식이 상상초월로 많다는 점이다. 명품 의류 브랜드가 불황 시즌에도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안 팔린 옷을 소각시켜버릴지언정 염가 판매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시장가치가 없는 제품이라고 해서 비위생적이거나 맛까지 떨어질까? 무농약으로 텃밭을 꾸려 본 우리로서는 마트 전단지에 등장하는 예쁜 파프리카와 참외가 얼마나 나오기 힘든 결과물인지 뼈 저리게 알고 있다.
우리가 키운 야채는 못 생겼다. 그림처럼 반듯한 샐러리와 브로콜리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잘 안 됐다. 그렇지만 비닐하우스도 아니고, 농약도 안 친 노지에서 반은 버리고(벌레와 새들에게 강제로 헌납하고), 남은 반을 먹는 우리로서는 못생긴 야채와 과일이 얼마나 건강하고 맛있는지 혀로 경험했다.
채소를 많이 먹는 우리 집은 작은 텃밭 생산량으로는 도저히 식사량을 맞출 수 없어서 유기농, 무농약 채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유기농이라 하니 이용료가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의외로 별로 비싸지 않다.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사 먹기 때문이다. 매주 종이상자와 최소한의 생분해비닐에 싸여 배송되는 못난이들은 제각기 사연이 있다.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생김새가 표준적이지 않아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 표면에 자잘한 무늬가 남아서 정규 시장에 공급되지 못했다.
텃밭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히 매끈한 고급품이지만, 냉정한 시장의 기준에는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입에 넣어보니 역시 맛있고 신선했다. 건강 생각해서 유기농에 발 디뎠다가 맛있어서 그만두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기농, 무농약 식재료는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이렇게 근사한 식재료가 획일적인 '예쁜이 농산물 기준'에 미달하여 썩어 없어질 운명이었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소비기한제 도입에 찬성하는 까닭 중 하나는 초신선 제품 선호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단골 도넛 가게 사장님이 저녁 일곱 시 무렵에 문자를 주셨다. 사정이 생겨 가게를 일찍 닫아야 해서 남은 도넛을 좀 싸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일생산 당일판매 원칙을 지키는 가게다 보니 그냥 폐기하기 아까워서 단골손님을 호출한 듯했다. 나는 답례로 유기농 사과 두 알과 작은 히말라야 소금통을 챙겨 도넛 가게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이 이 도넛 가게를 애용하게 된 사연은 맛도 당연히 좋지만 '개인 스테인리스 통' 포장에 적극 지지를 보내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빵집, 아이스크림 전문점, 디저트 카페가 즐비한 동네에서 지나친 플라스틱 사용을 함께 가슴 아파해 주시는 도넛 사장님이 좋았다. 개인 용기를 들고 가서 도넛 여섯 개를 사면 사장님은 "저의 환경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만 같아 고맙습니다" 하면서 서비스로 한 개를 더 끼워주시고는 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장님이 '당일생산 당일판매' 원칙을 세운 것은 손님들이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자영업을 했더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고객의 선호를 반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다소 겸연쩍게 "요즘은 다들 너무 포장을 과하게 하지요. 버려지는 음식도 많고"라고 말씀하셔도 단순한 고객응대 요령이나 변명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초신선을 추구할수록 늘어나는 폐기 음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