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권우성
- '빚진 이들의 몫을 왜 세금으로 탕감해줘야 하나' 하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세금은 10원도 안 들어간다. 엄밀히 말해 은행 대손충당금에서 쓰인다. 당초 은행도 부실률을 생각해 채무자들에 다른 이자율을 매긴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더 비싼 이자를 매기지 않나. 그렇게 '보험'을 드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국민 인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적시에 채무를 조정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진짜 국민 세금으로 그들을 부양하게 될 것이다."
- 왜 그런가?
"그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상담하고 있는 50~70대 채무자들은 모두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청년'이었다.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대였다. 그런데 채무 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노동을 할 수 없었다. 가령 빚을 지면 보통은 채권자를 피하기 위해 주소지를 아무 데나 등록해둔다.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고 주소지를 말소시킨다. 그런데 어딘가 취업을 하려면, 주민등록등본을 내야 하지 않나. 결국 등본을 요구하지 않는 정상적이지 않은 직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쩌면 세금을 내면서 살 수 있을 사람의 발목을 잡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든다. 그들에 대한 부양은 곧 나라 몫이다."
-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나?
"2002년 카드 사태 때 청년이었던 한 여성분의 이야기다. 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돌려막기에 실패했고 파산하면서 곧 집에서 나왔다. 이후 친구 집에 주소를 등록해뒀지만 곧 채권자들에 의해 주소가 말소됐다. 직장에 들어갈래도 등본을 요구하니 들어갈 수 없었고 통장을 만들자니 압류되는 만큼 남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사용했다. 그 와중에 통장주가 돈을 안 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쯤 흘러 상황이 안정되자 빚을 갚아나갔고 모두 갚았다고 생각하고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갚지 않은 빚 하나가 남아있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채권자와 실랑이 끝에 원금의 30%만 갚기로 하고 빚을 청산했다. 그에겐 지금까지도 연락이 온다. 쌍둥이를 낳고 잘 산다고 하더라."
- 지난해 7월에도 금융위원회에서 주식이나 코인 등 투자로 빚을 진 청년들의 채무를 조정해주겠다고 했다가 청년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코인이나 주식 투자가 개인만의 잘못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사회에서 투자를 하도록 부추겼지 않았나. 정상적인 근로를 하면서 아파트 한 채도 살 수 없으니 투자로 눈을 돌리게 됐다. 또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이유로, 그들이 다시 일어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국내엔 다양한 채무자 구제제도가 있다. 각각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채무자 구제제도는 연체전(신속)채무조정, 이자율(사전)채무조정.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 개인파산까지 총 5가지가 있다. 채무 규모가 비교적 가벼운 앞선 셋(무담보채무 5억원 이하, 담보채무 10억원 이하)은 신복위에서, 나머지 둘은 법원에서 담당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한 기간에 따라 신복위의 조정 제도가 달라진다. 가령 신속채무조정은 최저생계비 이상을 버는 30일 이하 연체자에게 적용되는데, 연체 이자율은 면제, 이자율 또한 연 최대 15%로 줄어든다. 사전채무조정은 31~89일 연체자가, 개인워크아웃은 90일 이상 연체자가 그 대상이다. 각각 약정 이자를 절반으로 깎아주거나 전액 감면한다. 개인워크아웃에선 원금도 일부 탕감해준다.
반면 개인회생 대상자는 최저생계비 이상 고정소득을 벌지만, 무담보 10억원 이하, 담보 15억원 이하의 채무를 진 사람이다. 이때 법원은 채무자 소득으로 3~5년까지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남은 채무를 면책해준다. 반면 개인파산은 채무자에게 소득이 거의 없어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다. 채무자의 남은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빚은 면책된다."
"파산하면 '주홍글씨' 새겨진다는 말은 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