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영국 박물관에 전시된 '엘긴 마블스'
연합뉴스
그리스가 문화 국제주의 전략에 도달하기까지는 수 십 년이 걸렸다. 시작은 문화 민족주의였다. 그리스 문화부 장관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는 1983년 영국이 엘긴 마블스를 훔쳐갔다며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영혼이니"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거부할 경우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갈 것이라 했지만 영국은 1984년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1985년 이 문제를 법률적으로 따진 미국 스탠퍼드 법대 존 헨리 매리맨(John Henry Marryman) 교수는 법원에서 그리스가 영국 박물관을 이길 수 없다는 요지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도둑맞았다'는 그리스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 단계가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오토만 제국이 유물 소유권을 엘긴 백작에게 줄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가 여부다. 답은 있었다다. 13세기에 외부 지배에 들어간 그리스는 1460년 이후로는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리스 독립은 1832년이다. 신전이 그리스의 '영혼'이 된 것은 독립 후의 일로,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 기원으로 고대 아테네를 놓고 그에 따라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겼다.
둘째, 오토만 제국이 엘긴 백작에게 조각을 파내서 영국으로 가지고 가도록 허가했는가다. 답은 그렇다다. 엘긴 백작은 신전의 유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본을 뜨기 위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떼어내어 영국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문서를 발급받았다.
셋째, 엘긴 백작이 한 행동이 오토만 제국이 허가한 권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는가다. 답은 그렇다다. 떼어내는 과정에서 '야만적이었다'는 발언도 있었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단이 일반적이다.
매리맨 교수는 법적으로는 그리스가 영국을 이길 수 없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주장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그리스가 보다 강력한 주장을 만들어야 반환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후 논쟁은 사그러들었다.
2015년 그리스는 문화재 반환을 다시 추진하며 "외교적 정치적" 접근을 발표했다. 소송 가능성 대해 당시 문화부 장관 니코스 시다키스(Nikos Xydakis)는 "국제 재판소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해 12월 영국 박물관은 소유권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려는 듯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대리석 몇 점을 대여해 그리스를 자극했다.
2019년 8월 말 그리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보였다. "아크로폴리스가 굳이 그리스에 귀속될 필요는 없다"고 한 것. 이는 엘긴 마블스 논의를 '도둑맞은' 자국 문화가 아닌 보편적 문화 수준으로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리스에 있는 나머지 조각들과 "통합"될 때 엘긴 마블스가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으로서 온전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첫 움직임으로 일정 기간 조각품을 보내라. 그러면 그리스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아주 귀한 작품을 영국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영국 박물관이 자랑하는 엘긴 마블스가 빠져 나가도 박물관 명성에 금이 가지 않도록 비슷한 급의 문화재로 박물관을 채워 주겠다는 제안이다. 물론 장기 대여다. 구체적인 리스트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가멤논 황금 마스크가 올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선악의 잣대를 뺀 그리스 정부 측 언어에 영국 박물관도 누그러졌다. 영국 박물관도 법적 문제와 별개로 곱지 않은 시선을 알고 있다. 애초부터 있었다. 대표적으로 19세기 영국 시인 바이런은 신전에서 조각을 강제로 떼어 낸 엘긴의 행동과 그것을 구입하는 의회에 "야만적"이라고 분노한 바 있다. 1984년 그리스를 방문한 노동당 대표 닐 키넉은 귀국 후 신전이 "이빨 없이 웃는 것 같다"며 도덕적 측면에서 반환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주장했다.
최근에 이 여론은 더 커지고 있다. 1월 초 <유고브> 여론 조사에 따르면 53%가 반환 찬성(20%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21% 반대)이다. 게다가 바티칸이 소유한 파르테논 유물 세 점을 기부 형식으로 돌려보낸다는 지난 12월 프란치스코 교황 발표는 영국 박물관에 대한 압력을 최고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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