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뭐 하나라도 저질러 봐오랜 숙제 같은 전통춤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결심을 먼저 소문내고 있습니다.
정경아
나도 신년 포부를 밝힌다. '진주교방 굿거리춤'을 다시 배우는 거다. 몇해 전, 발목 인대 파열로 구민회관 춤 강좌를 끊은 후 시도 때도 없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숙제랄까. 얼마 전부터 '한국무용배우기'라는 유튜브 채널 속 춤동작을 따라 나홀로 거실 춤판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걸로는 성에 안 찬다.
왜 하필 진주교방 굿거리춤에 꽂혔냐고? 진주 교방은 조선 시대 평양 교방과 쌍벽을 이루던 기생 아카데미였다. 일제 강점기엔 진주 권번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김수악 선생(1926~2009)은 진주교방이 낳은 천재 댄서. 얼치기로 5년 여 한국춤을 배웠던 내 눈을 번쩍 뜨게 한 게 바로 그녀의 중독성 있는 구음에 실린 진주교방 굿거리춤이었다.
이건 한 마디로 유혹의 춤이다. 오른팔 하나만 들어도 교태가 자르르 흐른다. 섬세한 어깨 움직임과 자유분방한 손목 놀림이 그대로 댄서의 언어다. 내딛는 버선 발동작에 실린 은은한 교태까지. 노골적으로 벗어 제치는 유혹보다 더 아찔하다. 우리 춤이 이룩한 매혹의 품격이 궁금한 이들에게 유튜브 동영상들을 강추한다.
60대 후반에 춤바람이 도졌느냐며 친구들이 비웃는다. "기생이라도 퇴직할 나이가 지났다"고 놀려댄다. 사나흘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폭풍 검색을 시작한다. 광진구 통합예약시스템에 뜬 강좌가 보인다. 겨울학기가 지난해 12월에 이미 개강해 2월까지 3개월 코스다. 광진문화예술회관은 지하철로 한번 환승하면 되는 편도 1시간 거리에 있다. 당장 청강부터 신청하고 봄 학기엔 정식 등록을 할 생각이다.
이왕 갈 거면 명랑하게
근데 조금만 뛰어도 시큰거리는 내 발목이 협조해 줄까? 뱅그르르 도는 춤사위를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꼭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다가 못 가면 그만이다. 또 한 가지, 20대의 몸과 마음으로 추는 춤이 있다면 60대, 70대의 몸과 마음으로 추는 춤이 있을 것이다. 춤에는 댄서의 지나온 삶과 생각이 실리게 마련이니까.
한국인을 오늘도 짓누르고 있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강박은 어느덧 내게서 사라진 모양이다. 대충 재밌게 살기로,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기로 인생관을 바꾼 덕분이겠다.
집밖으로 나온다. 싸늘한 공기가 마스크를 벗어 제친 코끝에 상쾌하다. 내 발로 걷는 기쁨이 샘솟는다. 그래, 이렇게 계속 걷는 거야. 내 목표는 넘어지고 코 깨져도 이번 생을 완주하는 거잖아. 이왕 갈 거면 최대한 명랑하게 가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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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직장생활 30여년 후 베이비부머 여성 노년기 탐사에 나선 1인. 별로 친하지 않은 남편이 사는 대구 산골 집과 서울 집을 오가며 반반살이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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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후반입니다, 2023년엔 '춤바람' 좀 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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