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준비중인 북한산 사기막골 야영장 전경. 흰지붕은 ‘솔막’이라는 간이숙소, 바로 옆은 ‘카라반’이라는 조금 고급스러운 숙소다.
문세경
2022년 9월 말, 3개월짜리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곳저곳을 뒤지니 국립공원공단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다. 전형은 간단했고, 합격. 10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근무하는 근로계약서를 썼다. 출근지는 경기도 고양시 사기막골 북한산 야영장. 이곳의 개장을 준비하는 일을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왕복 40km 자차 출퇴근, 소요 시간 왕복 두 시간을 빼면 좋았다. 산을 좋아하니 매일 아침 등산하는 기분으로 출근했다. 멋진 풍경은 덤이다. 야영장 주변을 청소하고 잡풀을 뽑고 카라반에는 조리도구를 솔막에는 이불과 상비약품, 청소도구를 비치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근무지 변경했으나
근무한 지 한 달이 될 무렵, 야영장에서 잡풀을 뽑고 있는데 직원이 불렀다.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10월 말일 자로 계약이 종료돼요. 혹시 직원 식당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집이 정릉이라고 하셨죠? 사무소에서 집도 가깝고 출퇴근 시간 줄어서 좋을 것 같은데."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는 정릉에 있다. 집에서 700m 거리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예상 못 한 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0월 26일부터 직원 식당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있을까. 임노동자로 처음 해보는 새벽 출근이다.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30~40인분의 점심을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물론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다. 같이 일하는 분이 한 분 더 있다. 하숙집을 20여 년 운영했던 베테랑 경력자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보조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착각을)이다. 북한산사무소의 근무 방식은 주 5일 근무지만 토요일, 일요일이라고 무조건 쉬지 않는다. 주 7일 중 이틀을 본인이 정해서 쉰다. 평일에 쉴 수도 있고, 주말에 근무할 수도 있다.
두 명이 일할 때는 보조역할(식재료 다듬고, 씻고, 자르고, 설거지)만 하면 되지만 혼자 일할 때도 있다고 한다. 주 5일 근무하고 이틀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두 명 중 한 명이 쉬는 날은 혼자 일해야 한다. 출근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함께 일하는 분이 말했다.
"내일은 제가 쉬는 날이에요. 제가 쉬면 문쌤 혼자 밥을 해야 합니다. 혼자 할 때는 쉬운 메뉴로 하면 돼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집에서 세 식구 먹는 밥도 겨우 하는데 30명이 넘는 사람들의 밥을 혼자 할 수 있을까? 시간 맞춰 할 수 있을까? 맛없으면 어떡하지?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도시락 반찬은 뭐로 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11시 50분까지 밥 짓고, 반찬 세 가지를 만들어야 한다. 30~40인분의 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양념해서 익힌다.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아참, 산에 올라가는 직원들의 도시락도 싸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굳게 마음먹으면 못 할 일이 무엇인가. 청력이 안 좋아진 후부터 악으로 깡으로 40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