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에서 영감을 얻은 김환기 화백의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코튼에 유채 292*216cm
환기미술관
사람들은 시계와 달력을 만들어놓고 하루, 한 달, 일 년이라는 눈금을 그어가며 영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매듭짓고 있다. 하기사 인간에게 시간의 매듭이 없다면 지나간 날들을 성찰하지도, 다가올 시간을 새롭게 맞이할 준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우는 12월이다. 쫓고 쫓기며 지나온 시간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 되면 누구에게나 심연에 묻어 두었던 회환과 함께 가슴에 사무치는 문장이나 시구(詩句) 하나쯤은 떠오를 것이다.
얼마 전 12월 초순. 태양과 지구, 달과 화성이 일직선으로 늘어서는 우주쇼가 펼쳐진다는 뉴스를 접하고 밤하늘을 쳐다봤던 적이 있다. 한참을 올려다봤지만 육안으로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겨울 밤하늘에서 무수히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 사이로 문득 시구절 하나가 내려왔다.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저 별이 총총했던 겨울밤. 아득히 먼 우주로부터 읊조리 듯 들려오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차가운 겨울바람만큼이나 명징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만물의 근원은 '생성과 소멸의 연속임'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성북동비둘기>라는 시를 지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명문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저녁에' 일부. 시집 <성북동비둘기>(1969)
암울했던 구한말,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언론사 사장과 경희대학교 교수를 지냈던 김광섭 시인은 시집으로 동경(1938),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김광섭 시선집(1974) 등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중동학교 교사 시절에 학생들에게 반일 감정을 주입했다는 이유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