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연구회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1980년대 이후 2015년까지 지난 35년간 우리 노동 시장에서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 차이는 꾸준히 확대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돼 임금을 끌어 올렸고,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격렬한 저항으로 기업은 외주화와 비정규직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내부의 정규직은 보호받았지만 외부의 아래도급, 중소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에 시달렸다.
경제위기 속 기업이 비용을 줄이려 기존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대신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를 착취하는 전략에 정규직 노조는 당장의 우리 일이 아니라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기업과 노조 그리고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착취의 구조를 제도화한 정부의 책임이 균형적으로 지적되고 그에 따른 희생도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
그런데 연구회가 진단한 노동시장 이중화의 책임은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떠 넘겨지고 윤석열 정부가 이에 기초해 시행코자 하는 노동개혁을 위한 고통 분담은 노동조합에게만 강요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다.
보수 언론과 정부는 이를 왜곡해 엉뚱한 정책을 만들려 한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연구회의 진단을 빌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다수 일하는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 원흉이라고 공격한다. 정부의 개혁 방안은 이후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힐 것이다.
역사적으로 연공급은 기업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 근속연수나 경력이 증가함에 따라 숙련도나 직무수행능력이 높아진다는 '숙련 상승설'에 근거한다. 여기에 더해 무상교육이나 육아수당처럼 사회임금이 발달한 선진국과 달리 가족의 생계를 온전히 노동자의 임금으로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속에 따라 노동자 생계비는 늘어나기에 기업은 인력 확보를 위해 연공급제로 인력을 확보했다.
특히 뚜렷한 직무 구분 없이 기업 내 다양한 부서 간 인사이동을 통해 인력을 활용하는 우리 기업의 특성상 연공급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연공급 제가 폭넓게 시행되는 대기업과 공무원 조직에선 부서간 협업에 능숙한 '제너럴 리스트'를 필요로 했다. 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은 대규모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초기 임금을 낮게 책정하되 장기근속에 따라 임금상승 폭을 확대해 안정적으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공급제를 폭넓게 활용했다.
이같은 연공급제의 배경을 무시한 채 특정 직무의 가치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한다면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물론, 직무 구분 없이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바라는 중소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이 현장 인력 운용 방식과 맞지 않아 수용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삼성을 비롯해 대기업의 직무급제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연구회의 권고처럼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진정한 직무급이 시행되려면 CJ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강 대리와 CJ 협력업체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정대리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기업의 규모와 지급능력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한국 노동 시장의 현실을 바꾸지 않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임금 불평등을 확대한 것은 노조 가입 여부가 아닌 기업 규모와 이익률이었다. 기업이 임금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임금 불평등이 확산된 1994~2008년 사이 기업간 임금 격차는 노동자의 숙련보다 기업의 임금 프리미엄(우월성)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규모가 큰 재벌 대기업이 정부의 수출중심 경제발전 전략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이러한 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지 않은 채 독식한 결과가 오늘날 노동 시장의 임금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다.
임금 불평등 해소 위한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가 시급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외부 노동 시장에서 저임금에 고통받는 비정규직,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을 위해 최저임금을 생계비 등에 연동시켜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이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대기업과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사회임금의 형태로 육아수당을 지급해 저소득 노동자의 복지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었다고 비판하지만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노동 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의 과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격차 해소에 기여했다는 점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