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내 주머니에 찔러 준 돈뭉치
Hyeyoung Jess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자리 구하기 1편>의 글이 브런치에 발행되고 난 바로 다음 날, 모 브런치 작가님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따님의 여행길에 얼마라도 보태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란 화면 창에 뜬 메시지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안경을 쓰고 다시 또박또박 읽었다. 현관문에서 학교를 가려고 신발 끈을 묶고 있는 큰 딸한테 메시지를 보여 주니 싱글 방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이 한국어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이 기사가 발행되고 위의 메시지와 함께 독자 원고료가 들어왔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거라 '독자 원고료가 뭡니까?'라고 오마이뉴스 에디터님께 여쭈어 보기도 했다. 기적처럼 내년에 큰 딸이 갈 역사 탐방 여행비가 100% 채워진 데다가 여행 때 쓸 용돈까지 생겼다.
"모두가 연결되었다. 아주 가느다란 끈으로 느슨하고 끊어질 것 같이 약한 끈이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는 줄. 그 줄을 누군가가 잡아당기면서 "저 여기에 있어요"라고 한다. 그 사람을 발견한 우리는 당신이 그곳에 있었군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요. 당신이 잘 되면 좋겠어요. 이런 새로운 연결의 방식이 우리의 사회를 선한 방식으로 연결해 주는 것 같다. " - 김민섭 작가 '사색의 공동체 스미다'의 강의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도 잘 모르는 우리 동네, 틸리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14살 소녀가 역사 탐방 여행을 간다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를, 우연히 딱 한 번 만났을 사람들이 가느다랗고 느슨하게 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게 연결되었다.
해나와 동생 엘리엇은 우리 집에 자주 들락날락거린다. 오늘 같이 으슬으슬 추운 날에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에 왔다. 밖에서 서성거릴 때보다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보드 게임도 하고 '애니'라는 영화도 봤다. 정말 별거 아닌데... 아이들이 웃어주니까 고마웠다.
본인들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비행기 한 번 타고나니 밟게 된 이 낯선 땅도 제법 살만한 곳이라는 걸. 마음 붙이고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해나와 가족 모두가 잘 되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11월에 썼던 '스코틀랜드에 삽니다' 일자리 구하기를 이제 3편으로 마치려 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은 <더할 건 없는데 뺄 건 많고>였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다 보니 더할 이력은 없는데 뺄 조건이 많아서 붙인 제목이었다.
지금 보니 월급도 마찬가지다. 더할 게 없으니 작은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배우던 바이올린 과외를 뺐다. 19도였던 우리 집 실내 온도도 1도 더 뺐다. 100살이 넘은 오래된 집이라 창문 틈새로 찬 바람이 휘휘 들어온다.
아이들은 히잡처럼 이불을 머리 위로 덮고는 두 눈을 깜박거리며 거실 벽난로 앞으로 오순도순 모였다. 우리 집만의 괜찮은 겨울 풍경이다. 앞에서 말했던 해나의 엄마도 그랬다. 떠나려고 짐 가방을 싸고 보니 더할 자리는 없는데 빼야 할 게 수두룩 했단다.
솔직히 빼기보다 더하기가 훨씬 좋다. 요즘의 빼기는 마치 심장 없는 다이슨 청소기처럼 무섭다. 무심하게 다 빨려갈까 봐 심장이 벌렁 거리다가도 자기의 몫을 기꺼이 빼서 다른 사람에게 더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적이 만들어진다는 걸 배운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덴 것처럼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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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함에 놓인 흰 봉투 하나... 어떻게 이럴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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