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발표하는 권순원 교수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연구회가 진단한 우리 노동 시장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에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에 발언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권고문에 대해 "한자 한자 곱씹어 읽으며 먹먹한 심정이었다"고 공감을 표시했고 "노동 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수용 의지를 내비쳤다. 여당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까지 허용하던 특별연장근로를 내년에도 계속해서 시행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꾸자고 호소했다.
연구회의 권고안을 기본으로 정부와 여당이 이를 제도화 한다면 앞으로 노동자의 연장근로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1주 단위가 아닌 한 달 혹은 6개월, 더 길게는 1년 단위로 관리가 이뤄진다. 현재 통상임금에 1.5배를 가산해 지급하는 연장근로 수당이나 휴일근로 수당 대신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초과수당만큼 휴가가 적립될 것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노동자가 회사에 육아나 학습, 가족 돌봄의 이유로 출퇴근 시간의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계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대기업의 일부 노동자들은 높은 기술력으로 경쟁우위가 있는 만큼 시간선택에 있어서 회사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일하는 제조업 등 중소기업의 노동현장에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일터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수요 때문에 불가피 하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사업주들은 집단적으로 소속 노동자를 규율하고 싶어한다. 출퇴근 시간 관리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인사노무 역량으로 기업이 과연 다양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선택 욕구를 충족시키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연장근로 시간 관리 방식 변경과 근로시간 저축계좌가 결합하면 실질적으로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1년으로 늘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이다. 해당 기간 평균적으로 1주 12시간을 충족하면 특정주에는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연장근로한 수당은 근로시간계좌에 저축해 필요할 때 꺼내 쓴단다. 인력 부족으로 법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현실에서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시간 압축적으로 노동하고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근로시간 유연화' 시도는 두 가지 지점에서 퇴행적이다. 먼저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법의 핵심 목적과 배치된다. 노동법의 핵심 목적은 결코 상품으로 취급될 수 없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여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연구회의 권고안에 따르면 1일 최대 노동시간은 11시간 30분이다.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게가 보장돼야 하고 근무시간 13시간 중 휴게시간이 4시간 마다 30분씩, 총 1시간 30분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1주에 6일을 연속해서 일한다고 가정하면 1주 동안 최대 69시간을 일하게 된다.
이를 기준으로 게임개발업체가 업무특성에 따라 1년을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한다 가정해 보자. 1년간 허용되는 총 연장근로 시간은 권고안에 따라 440시간이다. 회사에서 게임 출시 압박으로 1년 중 특정 주에 집중해 연장근로를 권하면, 노동자는 1주일에 69시간(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연장 29시간)씩, 약 15주간(440시간÷1주 최장 29시간) 일해야 할 수도 있다.
계절적 요인으로 3개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는 냉난방기 업체라면 3개월에 허용되는 총연장 근로시간은 권고안에 따라 140시간이 된다. 이를 1주 최대 29시간의 연장근로 가능 시간으로 나누면 약 4.8주로 4주를 초과하여 5주 가까이 1주 69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는 정부가 뇌혈관 및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만성 과로 기준을 초과하는 노동강도다. 산재보험의 과로 인정기준에 따르면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 이상 근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60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면 반증이 없는 한 산업재해로 인정된다.
사람의 몸이 특정 시간에 격렬하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푹 쉰다고 컨디션이 제자리로 돌아오나? 고무줄이나 용수철도 탄성한계를 넘어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탄성한계에 해당하는 산재 인정기준을 넘어서는 근로시간을 허용하면서 노동개혁이라 부른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균형 잃고 기업 요구만 담은 권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