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경진 승무원의 모습
정혜원
눈물 왈칵 쏟아지던, 3월 31일의 '마지막 비행'
그는 지난 3월 31일, 마지막 비행 날의 출근부터 스케줄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날은 울산을 찍고 김포에 돌아왔다가, 다시 제주를 갔다 오는 바쁜 하루였다고 한다. 지상 직원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문을 닫은 뒤, 평소처럼 사무장으로 이륙 방송을 했다.
"헤드셋을 딱 거는데, 이제 승무원으로는 마지막 이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확 쏟아졌어요."
박경진 승무원은 그날을 회상하다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는 "그러고 나서도 역시 나는 승무원이기 때문에 눈물 딱 그치고, 아주 씩씩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승무원 생활이 끝나고 학원을 해라, 대학에서 강의해라, 여러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소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경진 승무원이 말하는 '나선다'는 건 이런 의미다.
"내가 말한 '나선다'는 건 나를 내보인다는 걸 의미해요. 이름 석 자를 보이면서 빛내려고 하는 거요. 난 내 이름을 빛내기 위한 건 안 하고 싶어요. 승무원은 손님들 앞에 나서기는 하지만 나를 보이는 직업은 아니에요.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손님을 존중하고 기내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게 내 임무예요. 객실 내 안전에 대해선 거의 박사죠. 하나하나 생소한 게 다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그건 나를 내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그의 39년 비행 생활이 늘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 승무원은 사원급 객실 승무원 4년을 거치고 나면, 부사무장(Assistance Purser·AP)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시험과 근무 성적을 보고 진급이 결정된다. 박경진 승무원은 1987년 바로 부사무장으로 진급했다. 진급한 연도가 뒤에 붙어 'AP 87'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직급인 사무장(Purser·PS)이 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7번이나 진급이 누락된 것이다.
"1987년도 입사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AP를 달았는데도 불구하고, 저만 안됐죠. 그래서 PS 99(1999년)였어요."
계속되는 진급 누락, 사무장 되기까지 걸린 12년
박경진 승무원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당시 뉴욕이나 LA 경우엔 한식당이 있으니까 차량이 픽업을 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지역은 한식당이 없었어요. 그런데 (남자 사무장이) 한식을 먹고 싶어 하니까, 깻잎 같은 반찬에다가 쌀까지 싸 와서 밥을 해 먹었어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