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사찰 길상사(자료사진).
권우성
길상사는 법정 스님이 김영한씨로부터 기부를 받은 요정 대원각을 개조한 절이다. 1995년 성북동의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한 김영한씨는 젊은 시절 백석 시인과 열애를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내 사랑 백석>이라는 수필집에서 김영한씨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가 바로 자신이라고 술회하였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로 시작되는 이 시를 나도 암송하던 적이 있었다. 노동운동을 하다 보면 수배되고,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몸이 지친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선거에 대응하느라 가산이 거덜나고, 진보정당이 잘 될 희망은 보이지 않고, 불현듯 세상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시구는 삶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샤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나타났다.
"당신은 봉투 한 장을 떨어뜨리고 떠났다. 누런 미농지 봉투를 뜯어보니 당신이 친필로 쓰신 한 편의 시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당신의 그 깊고 진실한 사랑의 환상에 빠져버리곤 한다. 당신은 때로 '나타샤'가 없는 덩그런 부인방에서 혼자 쓸쓸히 소주를 마시곤 했다."( <내 사랑 백석>)
'나타샤'는 특정의 여인이 아닐 것이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시 속의 연인'이다. 하지만 백석과 김영한은 한 시절 사랑을 주고받은 연인의 관계로 알려졌다. 때문에 김영한의 회고를 사실무근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상사에 대한 원경 스님의 증언은 이어졌다.
"등기를 떼어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원각의 원주인은 조봉희였는데요, 조봉희는 박헌영의 누나였습니다. 박헌영의 어머니 이학규가 첫 남편 조 씨로부터 얻은 딸이 조봉희구요. 이학규가 박현주와 재혼을 하여 얻은 아이가 박헌영이었으니, 조봉희와 박헌영은 한 어머니에게서 출생한 형제 사이였지요. 대원각의 법적 소유자는 조봉희였지만, 실질적 소유자는 박헌영이었던 겁니다(일설에 의하면 박헌영이 누나 조봉희에게 맡긴 대원각은 당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곳이라고 함)."
"조봉희와 김병순 사이에서 딸과 아들이 태어나요. 딸이 김소산이죠. 영화까지 만들어졌던 여간첩 김소산 말이에요.(1973년 윤정희·최무룡 주연 영화 〈기생 김소산〉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김소산은 박헌영의 조카였던 거죠."
이것이 사실인가? 지금 원경 스님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 오랜 세월 자기 암시로 신념화한 환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넋을 놓았다. 하지만 스님에게 차마 그 자리에서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조봉희는 딸 김소산에게 대원각의 경영권을 넘겨주었고, 김소산은 1949년경 김영한에게 대원각의 관리를 부탁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봉희도 죽고, 김소산도 죽고, 1955년 대원각의 주인은 김영한으로 바뀌었다.
원경 스님의 회고가 사실인가, 상상인가? 요는 대원각의 등기를 떼어 보면 될 일이었다. 나는 손호철 교수께 대원각의 등기를 열람해 보자고 제안했다. 손호철 교수는 미리 준비를 해놓았다는 듯 한시도 지체 않고 바로 등기를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