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전 광주시 경제부시장이 최근 펴낸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 그림은 광주형일자리 개념도.
아논컴퍼니
왜 그럴까? 대기업·공공기관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니면, 안정적인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자리의 불균형' 때문에 그렇다.
9160원(2022년 시간당 최저임금), 월급으로 환산하면 191만 4440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300만 원. 지역 일자리 대부분은 이 금액들에서 시작한다. 그 와중에 2021년 전체 체불임금 신고액은 1조 3500억 원에 달하며, 2018년 청년 체불임금은 1400억 원을 넘어섰다. 일본의 임금체불 규모와 단순 비교하면 10배,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3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최근 내가 일하는 청년유니온을 통해 노동상담이 들어왔다. 2년 7개월가량 주 25시간을 편의점에서 일한 노동자였다. 주당 근로시간이 짧아 주휴수당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점장에게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퇴사를 하려는데, 이게 맞는 건지 물어왔다. '검색해봤는데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을 넘으면 준다고 하네요'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퇴직금과 주휴수당, 그리고 종종 추가된 야간근로수당을 더하니 내담자가 받아야 할 총액은 상상 이상이었다.
점장과 갈등을 빚어야하는 걸 무서워하는 그에게 전했다. 이건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괜찮다고, 쫄 거 없다고, 당당하게 요구해도 괜찮은 우리의 권리라고. 그런데도 그는 혼자 진정을 넣고 조사를 받을 생각에 무서워 노무사를 수임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 순간, 나는 그에게서 너무나도 익숙하며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무기력을 느꼈다.
우리는 매일매일 모멸과 차별, 배제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런 모멸과 차별을 덜 받기 위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지역에서 발 딛고 품격 있게 살아가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청년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한다. 그렇게 수도권으로 향한 청년들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내 몸 하나 뉘일 곳을 마련하고자 불안과 좌절을 반복하고는 한다.
최근 이런 생각을 자주한다. 동일한 일을 하는데 왜 동일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는가? 지역에 따라, 기업 규모에 따라, 성별에 따라, 왜 다른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일의 강도와 숙련, 직무가 같음에도 말이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사업체 중 임금체계가 없다고 답한 곳이 61.4%에 달했다. 많은 노동자가 '나의 노동이 어느 정도 (임금)가치를 지니는가?'란 질문에 답할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니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이제 묻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왜 '좋은' 일자리가 이리도 한정적인지, 왜 우리는 '나쁜' 그러면서도 '일상'이 된 일자리 속에서 하루를 벌며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
광주형일자리, 완벽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광주형일자리, 이게 '일자리'를 둘러싼 문제의 완전한 해법은 아닐 것이다. 노동운동이 만들어온 성과를 후퇴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일자리라는 비판 또한 타당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에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빈곤한 상태에 놓여있는 청년들에게, 매일 벌어지는 전쟁과 같은 경쟁에 삶을 비관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문장,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결연한 눈으로 든 피켓의 문구다. 정말이지 '이대로는 살아 갈 수 없다'. 우리에겐 자본으로부터 더 많은 몫을 가져오기 위한 투쟁만큼, 더 약한 이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투쟁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