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의 암호(60×120cm, 백유리·유약 소성, 2021, 조광호)깊고 짙은 '코발트블루빛' 비밀스러운 세상. 창 너머 갯벌에 물이 차오르면, 세상에 푸른빛을 퍼트린다. '마지막 단계에서 완성된 세상'이라는, 작가의 도상(圖像)을 담았다.
전재천 포토디렉터
봄이 오기 전이었다. 아직 찬 공기를 가로질러 동검도 바닷가 작은 예배당을 찾았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 외로운 사람, 쉼이 필요한 사람, 누구든 품어 안는 '마음의 집'. 그 집을 짓고 돌보는 조광호(75) 신부는 말했다. "싹이 돋고 꽃이 핀다고 봄이 아니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긴 겨울을 버텨온 사람에게만 온다"라고. 그렇게 다시, 봄을 맞았다.
오늘 다시 찾은 동검도 '마음의 집'엔 가을 햇살이 비추어 들고 있었다. 물빛으로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햇살이다. 그 빛을 따라 채플 옆 스테인드글라스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2층으로 올랐다. 삼면이 유리로 둘러싸였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세상.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흔들리는 나뭇잎과 물결이 비추어 든다. 그 빛은 햇살의 농도와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다.
공간 끝 창 모양의 프레임으로 눈길이 닿는다. 이름하여 '여여與與의 창'. '있는 그대로의 창'이라는 뜻을 품은 조 신부의 유리화 작품이다. 작가는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았을 뿐, 작품은 매 순간 하느님이 그려주신다. 어느 날은 바다가, 또 어떤 날은 하늘이, 땅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제 그림은 아주 작은 세상에 지나지 않아요. 하나 거대한 자연을 끌어들이지요.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됩니다."
창 너머 시간과 자연이 빚어놓은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멈춤, 다시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