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에 근접해가는 그림.
정혜영
함께 한 모든 시간에 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대는 후배가 아니었더라면 이 귀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까. 소중한 순간은 때로 우연히 찾아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마음에 짧게 머물다 금세 사라져 버린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귀히 여기며 살만큼 지혜로워지려면 얼마나 나이가 먹어야 하는 걸까.
친구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숱하게 많이 보았던 친구의 사진들 속에서 그녀가 그렇게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친구는 늘 자신보다 타인을 더 웃게 만드는 사람이다.
언제나 누구보다 서둘러 약속 자리에 나타났고 함께 한 모든 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항상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지인들의 경조사에 사려 깊게 기뻐하고 슬퍼했다.
남들에게뿐 아니라 가족에게는 더 헌신적인 엄마이자, 아내였다. 매사 가족과 다른 사람 위주로 의사 결정하는 친구를 난 자주 말리고 싶었다. "그렇게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며 주변 사람들을 위해 친구가 자신을 너무 희생하지 않기를, 친구가 스스로를 좀 더 보살피기를 바랐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친구의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출렁였다. 다른 사람만 챙기던 친구가 비로소 오롯이 자신을 드러낸 것 같았달까. 반백을 목전에 둔 평범한 친구의 모습이 내겐 어느 시대, 어떤 아름다운 명화 속 여인들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겨우 주 1회 취미로 미술을 배우는 미술 초보 주제에 친구를 더 멋지게, 더 드라마틱하게 그림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미술 선생님이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친구예요. 친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와! 친구분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미술 선생님은 자신도 주변 지인들을 많이 그려줬었지만 정작 자신을 그려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부러워했다.
활짝 웃는 친구의 모습을 살리려면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는 얼굴의 미세한 각도를 살려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 스케치 실력이 부족하다. 아쉬움이 남지만 친구를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은 내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