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해방이 온다'의 작사, 작곡자 이창학씨는 최근 '내 노래가 그대에게'라는 음반과 노래에세이를 냈다.
건강미디어협동조합 제공
- 다시 노래로 돌아왔네요?
"그렇죠. 노래를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있을 때 사회주의 붕괴, 이념의 붕괴를 겪었지만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연구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우리가 바꾸려고 했던 희망은 있지 않을까, 그 희망은 놓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귀국해서) 학교에 들어와 동료들을 보니까, 30대 초반이에요. 30대 초반이면 직장에 취직하고, 현장에서 노동운동 하던 애들도 다 나와서 자리잡고 일상인으로 밥벌이가 급하고, 가정을 꾸리고, 그런 일상들과 생계가 급한 거죠. 그래서 누구 앞에 가서 희망을 얘기하면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 경험을 하게 되고, 나도 생계에 매달리면서 그 사람들과 똑같이 돼 버렸어요.
(2005년에 발매한) '80년대의 회상'(Reminiscence Of 80's) 음반에 있는 노래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희망이에요. 그런데 그 희망이 없어진 거예요. 희망이 없으니 더 쓸 노래가 없는 거죠. 노래를 쓰고 싶긴 한데 더 이상 못쓰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학원을 하면서 먹고 사느라 10년을 보냈죠. 솔직하게 얘기하면 학원이 좀 잘 됐어요. 많이 잘 되다가 (지금은) 조금 꺾어진 추세에 왔는데 나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냥 돈 벌기 위해 아침, 저녁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데 뭐하러 돈을 벌고 있나, 나는 행복한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려면 나는 노래를 써야겠다, 그래서 10년 만에 노래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쓸 수 있을까? 그 전에는 계속 1년에 한두 곡은 썼는데, 10년 동안은 아무 것도 안썼거든요. 그래서 못쓸 것 같았죠.
거기에다 더 큰 부담감은 제가 노래를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기대한다는 거죠. '내가 그런 노래를 다시 써?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고, 나는 뭘 써? 나는 이제 그런 노래를 쓸 수 없는데, 노래는 쓰고 싶고, 그럼 어떤 노래를 써야 해?' 그런 고민을 했죠. 그렇게 고민하다가 2012년에 세 곡을 한꺼번에 썼어요. 그렇게 처음 쓴 곡이 '그리움'이에요. 젊었을 때 꿈이 있었을 그 친구들, 내게는 지사처럼 보인 선배들, 항상 따뜻하고 영원히 내 편이 될 것 같았던,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의탁할 수 있었을 선후배들, 그 시절 공동체 같은 따뜻함,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와 그것을 풀어내보자고 해서 그 노래를 썼죠('연가').
또 나를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가족들에 대한 얘기도 노래로 쓰고. 2012년이면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3년 정도 지난 때였는데, 그때는 분노만 하고 노 대통령이 안됐다는 정도의 감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냥 내가 느꼈던 생각을 담아서 노래를 써보자고 용기를 내서 썼죠('그대가 보고 싶던 어느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할 수 있을까 주저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됐죠. 그리고 나서 1년에 한두 곡 쓰게 됐어요.
그 이전까지는 희망, 거대담론, 엄청난 슬픔, 이런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런데 10년 이후에는 그런 부담을 떨치지 않으면 내가 노래를 쓸 수 없겠다, 내가 노래를 썼던 형식과 고유의 시그니처들, 감성들은 있지만 이전에 썼던 거대하고 아주 장중하고 아주 절절했던 노래들,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을지 모를 것과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노래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의 노래는, 어떤 사람의 말처럼 심심하고 재미도 없게 느껴질 수 있죠. 하지만 그때부터는 내가 그냥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 분노하는 것,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 안타깝다고 느끼는 것들을 노래로 풀어내면 되지 않을까? 어깨에 힘을 풀고, 그렇게 노래를 다시 받아들였죠.
이번에 음반을 내면서 그 이전과 이후 노래들이 다른 게 뭘까? 그 이전에는 희망이었어요. 어렸을 때에는 새로운 세계, 변혁에 대한 희망도 희망인 거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할 거야, 이것도 희망이었는데, 후반부에는 그것보다는 내가 그냥 느끼는 것을 노래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래가 주는 위안이 있고, 노래가 주는 고유의 따뜻함이 있잖아요. 내가 노래를 손에서 놓지 못하겠다, 그러면 노래를 하자, 노래와 함께 있으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썼던 것이 후반부 노래들인 것 같아요."
- 책에서도 그런 질문을 했던데 '왜 노래를 떨치지 못하는가' 궁금하네요.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먹고 살 만하니까 고급취미로 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고. 어릴 때 뭣도 모르고 만든 노래들이 사람들 입에서 불려지고 사람들이 그 노래로 공연하면 환호하고 박수치고. 그때는 작사, 작곡자가 누구라고 얘기 못할 때여서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거죠. 그랬을 때 감동, 감격, 기쁨이 있었거든요.
또 한가지는 내가 세상과 얘기하기에 제일 편한 수단이 노래였어요. 슬프거나 화나거나 격한 감정을 느낄 때나 세상과 얘기하고 싶을 때요. 내가 지금은 얘기를 잘하는데 예전에는 참 얘기를 못했어요. 그런데 노래로 하면 내가 표현되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표현되는 거죠. 그렇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내가 세상에 대해 푸념하거나 원망한 것인데 그 얘기를 누군가 듣고 좋아하고 있다는 게 감동이었고 뿌듯했어요. 일생에 내가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웃음) 지금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지만, 요즘에는 노래로 나를 표현한다는 게 더 커요. 옛날만큼 누가 듣지 않지만, 일기를 쓰듯이 나를 표현하고 나를 남기는 거죠. 내 얘기를 노래로 남긴다, 그게 더 큰 것 같아요."
"기쁜 노래가 별로 없어요... 기쁠 때는 노래를 못쓰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