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한바퀴 한 장면. 영암에서 8대를 이어온 숭어 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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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란은 어떨까? 생선의 알꾸러미를 재료로 쓴다는 점에서 어란과 명란젓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지만, 그 제조 방식을 면면히 따지고 훑어보면, '이렇게나 다른 요리였다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숭어, 대구 등의 알을 간장에 하루 정도 재웠다가 꺼내 건조시킨 다음,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표면에 수시로 참기름을 발라 다시 2차로 말린다. 대략 20일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우리가 아는 '어란'의 맛이 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어란은 두 번의 건조 과정을 통해 알꾸러미의 겉표면이 쫀쫀하게 차지고 단단해진다는 데 있다. 식감은 압착 프레스 햄과 꾸덕하게 말린 쵸리조나 살라미 사이의 어딘가.
반대로, 소금에 절여 삭히는 방식으로 만드는 명란젓은 이보다는 좀 더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당연히 손질해서 밥상에 내는 법도 달라진다. 명란젓의 경우 레시피에 따라 알을 흩뿌려 놓는 방식도 통용되지만, 어란은 아니다.
만드는 재료 역시 다르다. 어란은 좀 더 단단한 대구나 숭어의 알을 쓰지만 명란젓의 재료인 명태의 알은 그보다 알꾸러미 자체의 경도가 약하다. 따라서 상하기 쉬운 탓에 소금에 절여 삭히는 지금의 조리법을 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원물의 차이와 공정상 귀찮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 이 음식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계층이 본래는 전혀 달랐다는 추정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물론 부를 축적한 상민들은 어란을 즐겨 먹었을 수도 있고, 양반이라고 해서 반드시 명란젓을 먹지 않았을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어란은 '건어란'이라고 해서 당시 임금에게 백성들이 바치는 진상품이었지만 명란젓은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주된 향유층이 달랐다는 해석은 가능하지 않을까. 비유하자면, 돼지 기름을 정제한 라드를 발라 구워낸 요리를 먹고 살았던 중세 유럽의 귀족이 '마늘 냄새'와 '소 기름(=버터) 냄새' 진동하는 농노를 보는 느낌으로.
색 바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처럼 사회적 짠맛이 점점 더 고공행진하고, 그 규범에 따라 가가호호 개인들의 입맛마저 점점 획일화되고 지갑의 두께에 맞춰 구획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집과 가방과 시계 그리고 자동차보다 더 먼저, 맛에 대한 경험이 먼저 우리 후세대가 마주할 사회와 연대를 가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런 부분에서 이 사회는 벌써 서로가 서로를 엄격하게 밀어내고 있다. 아파트의 네임밸류, 학군, 부모의 스펙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는 그 상황에 맛에 대한 기호마저 자신의 경험으로 채워나갈 수도 없게 되는 거다. 간편식(HMR)으로 쉽고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하며 맛에 대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치고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점점 더 틀에 박혀 딱 맞아 떨어지는 자극적인 맛에 획일적으로 순응하지 말자고. 그리고 맛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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