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해크니에 위치한 비건 베이커리 카페우유와 버터,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빵
최미연
먹성이 좋았던 내게 음식은 양 많고 가격 저렴한 게 최고였다. 결혼식 뷔페에 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음식을 남기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복스럽게 먹는다며 온갖 칭찬 세례를 독차지했다. 그랬던 아이는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구보다도 깐깐하게 '가려 먹는' 비건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제로 웨이스트(남김 없음)를 실천하는 건 바뀌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은 특히나 한 판에 만 원도 안 되는 대패삼겹살 집이나 뭔가 하나라도 무한리필 되는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제 값 주고 먹는 일은 손해였기에 할인 쿠폰을 보내오면 굳이 사먹지 않아도 될 것에 충실하게 돈을 쓰는 소비자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으로서의 시선은 이전에 당연하게 누려온, '싸고 양 많은 음식'에 대한 소비에 제동을 걸었다. 값이 지나치게 싸면 총알 택배 배송처럼 누군가의 노동이 헐값에 착취 당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 이면을 상상하며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
세상에 공짜인 건 없다. 그렇기에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것엔 그만큼의 인력과 자원이 투자되기 마련이다. 그 인력은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며 자원이 육가공품이라면 역시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인 생명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소에게도 돼지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고소한 단내와 꼬릿한 치즈의 향이 들푸른 목장의 소로부터 자연스레 오는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 즈음 비건이 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은 젠더의 불균형을 바로 잡자는 평등에 기반한 것인데 다른 종의 여성이 한평생 끊임없이 출산을 강요 받는다? 그걸 바로 보지 않으면 차별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채식을 하며 가장 어려운 건 육고기를 안 먹는 것보다 이런 버터, 우유, 치즈가 함유된 식품들을 피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풍미를 더한다며 어느 과자이고 요리에 유제품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우유 광고는 들판에서 순백색의 옷을 입고 요가하는 (인간) 여성을 소로 불현듯 변신시키는 연출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몰래 다가가는 데서 이미 불법촬영과 여성의 대상화라는 것도 문제인데, 나아가 자사 제품은 다른 종의 여성에게서 '갈취'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들푸른 산과 목장에서 풀을 뜯고 노니는 소들도 있다. 그러나 전세계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우유와 치즈, 버터, 크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공장'을 가동한다. 축산업이라는 이름은 그들도 개별적인 존재이며 '임신'을 해야지만 '우유'가 나온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지운다. 단지 생산 개체로 일생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도축되는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이 '나이 드는' 생애주기란 없다.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기로 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