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29일 밤 10시22분경 대규모 압사사고가 발생해 1백여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길 바닥에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권우성
벌떡 일어났다.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이 집에 있다는 걸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방문을 열고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침대에 누워 있는 딸도 핸드폰을 보며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니?"
"그러게 말이야."
"너도 뉴스 봤지?"
"응. 보고 있었어."
"혹시 이태원에 간 친구들은 없어?"
"나도 알아봤는데 없는 것 같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네. 언니(이종사촌)도 안 갔지?"
"안 갔지. 우리는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근데, 어떻게 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일텐데.."
"그러게. 사상자가 많지 않아야 할텐데. 뉴스 보니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걱정이야."
"엄마, 너무 속상해. 자꾸 이런 일이 생겨서... 댓글에 막말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화가나.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이냐구! 죽어가는 사람들한테 그게 할 말이야?"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4시까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사상자 수는 자꾸만 늘어만 갔고 내 속도 타들어갔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여기저기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와 있었다. 스무살 아이가 있는 집이니 혹시나 해서 다들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친정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뉴스를 보셨는지 새벽부터 전화를 해 아이가 이태원을 가지 않았는지 확인을 하셨다.
모두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내 아이의 일이 아니라고 가슴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것조차 다들 미안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니까. 단지 축제를 즐기러 나왔다가 백 오십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계속 속보가 윙윙 거리고 있는데, 정신이 멍해져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차리는데 그제서야 일어난 작은아이가 나와 식탁에 앉았다. 눈 비비고 있는 아이에게 간밤에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니, 자느라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는 깜짝 놀라며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본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이 났는지 "누나는 집에 있지?" 하며 누나 방문을 슬쩍 열어 본다. 누나가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한 아이는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그 사이 핸드폰에서 기사를 읽었는지 밥을 먹으며 아이는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죽거나 다친 사람들 먼저 돌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서 잘잘못을 따져야지"라고 말했다. 아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망연자실할 가족들도 챙기고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아픈 사람들도 돌보고... 이런 것이 먼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