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봉 특강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 책을 낸 이규봉 교수의 저자 특강 사진(2014.3.26)
이윤옥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책에서 좋았던 부분 한 곳만 꼽으라면 15장의 '공집합과 무소유(∅⊂X)'를 꼽고 싶다.
"수에 있어서 0은 무소유를 상징한다. 0이란 아무것도 없는 수다. 즉 비어 있는 것이다. 0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 어느 수에 더해도 영향을 주지 않지만, 독을 품으면 곱하기(×)라는 연산자로 모든 수를 일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라고 하면서 공집합과 무소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유달리 눈에 들어온다. '비어 있으면서 존재하는 것' 가히 철학적이다. 남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0이란 숫자가 매혹적이다.
이 장에서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서른 개의 바큇살이 바퀴통에 연결돼 있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흙을 빚어 빈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 있으므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라는 노자 <도덕경>의 말로 공집합을 설명할 정도로 그는 동양 고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수학자인 그의 시야는 무한하다. 수학과 음악, 수학과 고전, 수학과 스포츠, 수학과 노동조합, 수학과 환경운동, 수학과 생명사상, 수학과 행복 등.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1) 수의 결합법칙과 노동조합 2) 루트2와 복사용지 3) 오일러 등식과 다양성 4) 정수와 자전거 5) 정수비와 음정 6) 정수비와 음계 7) 비유클리드 기하와 다름 8) 부등식과 무한의 세계 9) 비선형 오차와 나비효과라는 제목 아래 6~8개의 소제목 글들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2부에서는 생명존중이라는 제목 아래 1) 양의 지수함수와 가족계획 2) 음의 지수함수와 원자력발전 3) 적분 그리고 고통과 쾌감 4) 디락 델타와 사형제도 5) 디락 델타와 바람직한 선교 6) 공집합과 무소유 7) 일차독립과 장자의 백보일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장마다 '솔찬의 생각'이라는 난을 두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요점 정리하듯 해놓았다. 역시 수학자다운 발상이다. 솔찬은 이규봉 교수의 우리말 호다. 배재대학교 과학기술대학 학장을 지낸 이규봉 교수는 어찌 보면 평범한 수학자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면서 끊임없이 사회와 역사 문제에 관여해온 보기 드문 실천적인 시민활동가다.
그런가 하면 자전거, 수준급의 클라리넷, 피리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편, 현재는 서울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과 3학년에 편입하여 음악공부를 하는 열정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그는 분명 '오지랖이 넓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