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도시에 복무케 하라'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진 육교의 모습
이정희
- '지식이 도시에 복무케 하라(Let knowledge serve the city)'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무슨 뜻인지 설명해달라.
"이 슬로건에는 대학에서 만들고 배우는 지식은 도시와 나눔으로써 도시를 숨 쉬게 하고 살아나게 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이 행복하도록 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상아탑에 갇힌 지식이어선 안 된다. 우리 학교 예술대학 건물은 한쪽 면이 유리다.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발레 공연을 보고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예술은 특정 집단만이 누리는 특권이어선 안 된다. 지역 주민도 지역거점대학을 통해 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고, 대학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은 주민에게 지적, 정서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도심에 자리한 1층짜리 건물에선 영화학과 학생들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고 시민은 공짜나 다름없는 돈을 내고 영화를 즐긴다. 상업적 가치가 떨어지는 이 1층짜리 건물이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지역에 꼭 필요한 상징적 공간이다.
도심을 지나다 보면 길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에 '지식이 도시에 복무케 하라'라는 문구게 크게 써 있다. 길을 지날 때마다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에 젖어 든다. 그냥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건 줄 안다. 나도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그렇게 알고 지내왔다."
-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사례를 소개해달라.
"포틀랜드주립대가 외부에서 받아오는 연구비의 4분의 1이 우리 사회복지단과대로 들어온다. 단일학과로 되어있지만 학생수가 1000명이 넘고 실습과 연구에 참여하는 지역사회의 기관 수가 500곳을 넘어간다. 그만큼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미국 전역에 있는 사회복지학과 가운데 상위 30위 안에 들 만큼 평판도 좋은데, 우리가 추구하는 커리큘럼의 방향과 지역 공동체와의 연계가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사회복지학 출신들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주정부기관, 시청은 물론 경찰서에도 들어간다. 지역 기관들과의 연계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과들도 마찬가지다. 공학 계열도 지역에 있는 기업들과 함께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던가 평가 프로그램을 함께 만든다. 지역에선 연구자를 필요로 하고 학교 연구자와 학생들은 현장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가진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기관의 역량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대학이 함께 만들고 수업을 통해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렇게 모든 연구는 지역 공동체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 공동체가 우리의 파트너이자 지식을 공급해주는 원동력이다. 대학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는지를 지역사회가 빠르게 알아볼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꾸준히 알려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대학 건물들 1층엔 지역 상점이 들어가 있는 곳들이 많다. 경제적 기여도 중요한 부분이다."
-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포틀랜드를 떠나 더 큰 도시로 나가려고 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출발부터가 한국과는 다르다. 포틀랜드주립대 학생들은 더 큰 도시로 가지 못해 이 학교로 오는 게 아니라 이곳이 나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온다. 입학생의 63.4%는 포틀랜드 광역도시권에서 오고, 오리건 주까지 범위를 넓히면 80%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곳에서 오는 학생은 20%에 그친다."
또 다른 점은 학생의 3분의 2가 편입생이라는 점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미국의 공립 2년제 대학으로 교양과목과 전문 기초학문을 가르친다)에서 2년간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평균 나이도 26세로 높고 하고자 하는 분야도 뚜렷한 편이다.
2014년 <뉴욕타임스>가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미국 내 많은 도시들에 비해 포틀랜드는 고학력의 젊은 사람들이 이주를 해오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더 큰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적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이 계속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고학력 청년들이 더 많은 연봉을 포기해가면서 살려고 모여드는 곳이 바로 포틀랜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역사회에서 활동가로 일할 때도 대학과의 연계는 이어진다. 가령, 내가 가르치고 있는 행정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최소 10년 정도의 리더십 경력을 지닌 지역사회 활동가들이다. 공무원도 있고 민간기관 기관장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현장 경험을 이론으로 재조명해보고, 다른 활동가들과 만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전문적 정보를 교환한다.
졸업생들이 학생들에게 현장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보수도 받지 않고 인턴십 프로그램에 도우미로 나선다. 그러니까 졸업한 뒤에도 지역사회에 남아서 학생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돕고, 또 자식을 낳으면 그들이 다시 슬로건을 보고 자라 우리 대학에 입학한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대학을 중심으로 평생교육이 이뤄지고, 생애주기에 따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제공된다. 그게 진짜 지역거점대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대학이 그렇게 움직이려면 대학교 교수에 대한 평가 체계도 그에 맞게 짜여져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일하는 것을 대학당국이 적극 장려한다. '우린 주립대학이고, 주립대학은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지역 공동체 기반의 커리큘럼이 짜여져야 하고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여 주체를 이루는 연구를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함께 만들어 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시의 정책을 바꾸고 지역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장기 계획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있다.
교수 채용할 때부터 당신은 지역 공동체와 어떻게 협력하고 무엇을 연구하려고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평가 때도 지역 공동체와의 협력에 들어간 노력을 논문을 쓰는 것 못지않게 존중해준다.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걸 대학당국도 잘 안다."
- 저출산·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은 한국 지방대학들과 그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기 바란다.
"학생들을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서울에 가지 못해 남겨진 학생들로 보진 않았으면 한다. 대기업에 들어갔다가도, 공무원이 됐다가도 나오는 세상 아닌가. 그런 세상을 우리 청년들이 살고 있다. 세대가 바뀌었다는 걸 교수 집단도 깨닫고,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대학과 일자리만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들이 떠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 연속 인터뷰①] 고향에 기부금 내면 답례품... 죽어가던 소도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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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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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대학 슬로건... 모두가 감탄한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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