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현의 고향세는 최근 6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연경
- 민간이 상당한 수준의 주도성을 발휘하는 걸로 들리는데 실제로 그런가.
"모든 지자체가 그런 건 아니다. 고향세는 법률상 모금의 주체가 지자체이기 때문에 NPO 등 민간 단체의 주도성이 높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가현은 '시민사회의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기존 NGO나 NPO를 넘어 봉사활동 단체, 자치회·부인회·노인회 등 다양한 조직을 포괄한 CSO(시민사회조직, Civil Society Organizations)들이 고향세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봤다. 지자체에 기부하는 건 같지만 다른 지자체와 달리 사가현은 이렇게 모은 기부금의 90%를 곧바로 CSO에 전달할 수 있게 조례를 만들었다.
사가현은 CSO들이 지역 만들기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고 최소한으로만 관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난치성 제1당뇨병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신약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 프로젝트다. 고향세를 통해 연간 2400만 엔이 꾸준히 모이고 있다.
사가현은 공무원들에게 CSO 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무원들이 지역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가현이 제도를 바꾼 뒤 기부금은 2015년 1억 엔에서 출발해 최근 9억 엔으로 늘었고, 사업에 참여하는 CSO도 9개에서 104개로, 모두 10배 가까이 늘었다."
- 한국은 민관 협력 경험이 많지 않아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사업 시행한 지 15년이 됐지만 아직도 문제는 있다. 성공 사례들만 알려져서 그렇지 고향세 모금을 포기한 지자체도 많다. 사가현을 배우러 연수들을 많이 오지만 실제로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드물다. 사가현처럼 되려면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을 믿어야 하고, 민간은 그 믿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키포인트다.
선결조건 중 '신뢰 관계'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다. 지자체는 '우리가 민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는 어떻게 하느냐'하는 생각이 앞선다. 민간이 지자체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민간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거다. 우리가 원래 하던 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따라서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지자체도 민간이 충분하게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정해진 사항들을 지킬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는 새로운 제도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두렵다고 미리 포기해선 안 된다.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더 많은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가현도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응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민관 협력의 좋은 모델로서 고향세가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지자체 간 출혈경쟁을 걱정하거나, 고향세의 혜택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보나.
"일본도 매년 총무성에서 지자체별 모금 순위를 발표한다. 기부자들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답례품에 매달려서 기부금을 늘릴 생각만 하면 지자체 간 경쟁으로 적자를 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지역에 정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일본에는 답례품을 안 받겠다는 사람도 많다.
후루사토초이스(플랫폼)에서는 매년 지역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들을 모아 '후루사토 어워드'라는 시상식을 개최한다. 올해로 9년째 진행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이른바 '슈퍼 공무원'을 응원하기도 하고 루키(새로 업무에 배치된 공무원)들의 활약상을 소개하기도 한다. 주민과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더 많은 지자체가 이런 흐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은 세법에 근거하다 보니까 세금 담당 부서에서 맡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정말 숫자로만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마을 만들기 담당 부서나 민관협치 부서, 도시재생 부서 등 지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맡으면 양상이 달라진다. 지자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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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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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기부금 내면 답례품... 죽어가던 소도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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