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유튜브
민영화가 기업을 자유케 하리라
서울로 한정해 말하자면 지상 철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서울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진공 모터 역할을 할 GTX는 처음부터 지하 40m 밑 대심도 철도로 구상됐다. 정치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 그나마 남아 있는 지상 철도들마저 땅에 묻히게 된다. SF소설에 등장하는 거대 지하세계가 구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상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정치인들이 제시한 담대한 구상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소요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 질문에 정치인들은 이미 '모범답안'을 마련했다. 민자도입!
민간투자로 사업을 진행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이 줄고 세금을 그만큼 아낄 수 있다는 논리다. 선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들이 아낌없이 돈을 내놓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민자 사업은 공짜가 아니다. 이미 진행된 수많은 민자 사업의 폐해가 그 증거다.
때마다 돌아오는 철도 지하화의 유령?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해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역시 대선 후보 시절 서울과 부산의 경부선 철도를 비롯해 많은 구간을 지하로 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교통 대책도 아니고 주거 대책도 아니다. 교통 여건이 개선되지도 않는다. 개발을 통한 치적 쌓기에 불과하다. 멀쩡히 다니는 철도를 지하로 밀어 넣는 데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철도와 결합된 부동산 욕망이 꿈틀대고 토건 이해관계에 얽힌 이들에게는 축복이 내려진다.
지난 몇 년간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잡기의 대안으로 서울·수도권에 대규모 아파트 공급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미 고밀도 개발로 주택 부지가 부족한 서울에서 지상철도 부지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는 지금 과도한 개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서민을 위한 민생 대책이 아니다. 토건족의 뒤를 봐주는 거대한 도박이다.
교통 문제에 한정하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안에 더 시급한 곳들이 줄을 섰다. '질식철'로 불리는 김포 골드라인이나 이미 한계에 다다른 2·4·5·7·9호선 교통량 분산 대책도 필요하다. 경의중앙선과 강릉선 등이 중복되는 서울과 경기 동부의 철도 병목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전국으로 시각을 넓히면 도로에서 철도로 수단을 전환하기 위한 철도망과 궤도 중심 운영 환경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도로 교통 우선과 개발 지상주의의 망토를 둘러싼 기후 악당이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정치는 전국적인 광역망 구성과 이 광역망을 이어주는 철도망의 구상을 통해 지역소멸에 대비하고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