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7월 27일 워싱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발언을 하면서 기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기본적으로 집권여당에 불리한 선거다.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역사상 중간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1934년, 1998년, 2002년 세 번에 불과하다. 전후 중간선거에서 여당은 평균 두 자릿수의 의석을 잃었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초반까지만 해도 공화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졌다. 집권당인 민주당에게는 불리한 이슈가 많았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당시 급락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선에서 회복될 줄을 몰랐다.
경제 이슈도 문제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미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순방까지 이어가며 석유 증산과 유가 인하를 촉구했지만 최근 중동 산유국은 러시아와 함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석유 감산을 결의했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NPR에서 지난 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유권자의 37%가 인플레이션을 최대 이슈로 꼽았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는 절반 이상이 인플레이션을 최대의 이슈라고 지목했다.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경제사정이 집권여당에 호의적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할 것이라 예측했다.
변화하는 추세
그러나 추세는 변하기 시작했다. 연방대법원에서 내린 판결의 영향이 주효했다.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권이 기본권에 속한다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파기했다. 이에 따라 일부 주에서 여성의 임신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여성의 임신중단권 문제는 미국 정계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앨라바마를 비롯한 보수적인 주에서는 성폭행 피해자까지도 임신중단 수술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면서 큰 반발이 일었다.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지난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62%는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캔자스 주에서는 주 헌법에서 임신중단권 보장을 삭제할 것인지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보수적인 지역인 만큼 찬성 측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예상 외였다. 찬성 41% 대 반대 59%라는 넉넉한 표차로 반대파가 승리한 것이다. 미국 국민의 임신중단권 지지는 의외로 폭넓고 깊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임신중단권 문제를 시작으로 각종 개혁법안을 내세우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이 상하원을 통과하고 학자금 부채 탕감 등의 조치가 이어지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부상
공화당 측의 실책도 한몫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당내 경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정 후보에 대해 직접적인 지지를 표명했고, 해당 후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본선에 진출했다. 한편에서는 이번 선거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리전이라는 분석까지 나온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2024년 대선 재출마의 기회를 다지기 위함이었고, 후보들로서는 거물 정치인의 지지를 업고 쉽게 당선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2020년 대선결과 조작설 등 각종 음모론을 노골적으로 공유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해 낙선한 정치인이다. 대중정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인물이다. 패배한 정치인에 기대는 전략은 공화당 내의 경선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실제 본선거에서는 썩 유리한 전략이 아니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알래스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선거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계속해서 궁지에 몰렸다. 지난해 1월 6일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폭동 선동과 방치 사실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헌법 수호를 선서한 뒤 연방정부에 대한 폭동에 가담한 자는 연방정부 관료로 취임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난 8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택인 마라라고 리조트가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퇴임 시 국가 기밀문서를 불법 유출하고 부실하게 관리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자산가치 조작 의혹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은 다양하다. 각 지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극우파 후보가 경선에 승리해 본선에 진출하면서, 공화당 지지율은 답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