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로 마을과 들을 빼앗겨야 하는 평택 대추리 주민들과의 연대에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내걸고 싸웠다.
다산인권센터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이 변했고, 미군은 대중국 미군기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전쟁을 위한 미군기지로 마을과 들을 빼앗겨야 하는 주민들과의 연대에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내걸고 싸웠다.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 전국적인 싸움이 되어갔다. 인권침해에 대응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권활동가들도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2006년 3월초 투쟁의 거점 역할을 하던 대추분교를 철거하려는 공권력에 맞서서 대추분교 앞에 인권활동가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버텼다. 그 자리에 있던 나를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이 모두 경찰들에 뜯겨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 그는 학교 정문의 철문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버텼다. 강제로 팔을 빼다가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문정현 신부님도 같이 버티면서 그날의 행정대집행을 막아냈다.
아마 다산인권센터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말을 직접행동으로 지켜낸 사례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들은 너무도 많다. 2000년 12월말과 2001년 1월초 13일간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혹한기 단식농성을 통해 국회에서 물 건너갔던 국가인권위원회법안이 2001년 4월에 통과되었고, 그해 11월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아마도 가장 무모한 싸움은 삼성반도체의 황유미 노동자 사건을 접하고 나서 삼성과 싸운 일일 것이다. '무노조' 경영을 사시로 내걸고 노동탄압을 일삼아왔던 삼성과의 싸움은 승산이 보장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활동하는 '반올림'은 다산인권센터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탄생할 수 있었고, 삼성에도 드디어 노동조합이 생겨난 것에 다산인권센터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전국적인 사안만이 아니라 지역 사안의 연대에도 열심이었다. 2008년부터 수원역 광장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던 촛불집회는 이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박근혜 퇴진 운동까지 이어졌다. 다산인권센터가 중심이 되어 집회 판을 만들면, 딱딱한 운동권 집회가 웃음꽃이 피는 활기차고 재미있는 판으로 바뀌었다.
끼 있는 활동가들의 웃음 유발 개그가 있는 집회는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 옆 원천리천 물고기 폐사 사건을 계기로 '수원시 알권리 조례'를 제정하게 했고, 2019년 경기도 성평등조례 개정할 때에는 혐오세력들의 조직적 반대를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로 막아냈다.
수원이라는 지역에 있는 인권단체이면서 전국적인 사안에도 열심히 연대하고, 지역의 연대운동에서도 인권의 가치와 평등한 조직문화를 선도하는 다산인권센터는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모토처럼 양보하지 않고 온몸을 던지면서 싸워 많은 일들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