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친구들과 한컷.제일 왼쪽이 나다. 축구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늘 제일 작아 주눅 든다.
이지은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먹으라는 안주는 안 먹고 새우칩 과자만 세 접시째 축내고 있는 나를 축구 친구 바우가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다.
"언니, 벌크업 시켜줄까요?"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눈빛. 과거에 나와 몸집이 비슷한 친구를 벌크업(근육량을 증가시켜서 몸의 덩치를 키우는 작업)에 성공시킨 바 있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말에 반색을 하며 "해줘! 나 벌크업 하고 싶어!"라고 소리쳤다.
"일단 규칙적인 습관부터 버리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밥 먹고, 잠자고, 간식은 하나도 안 먹잖아. 언니는 7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 먹는다면서요. 그러면 절대 벌크업 못 해요."
바우는 배달 앱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는 나의 고백에 소스라쳤는데, 나로서는 그 소스라침이 오히려 의아하다. 배달 앱으로는 보통 야식을 시킬 텐데, 그거 먹고 자면 속이 부대끼지 않나. 그 부대낌들을 이겨내야 피지컬이 좋아져 축구를 잘할 수 있다니. 축구왕의 길은 도대체 왜 이토록 닿기 어려운 걸까.
"아, 알았어. 일단 살을 찌워야 한다는 거지? 열심히 해볼게."
이후로는 밥을 먹을 때마다 바우의 말을 생각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다가도 한 입이라도 더 먹고, 어떻게든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이왕 결심했으니 제대로 해볼까 싶어 식단 관리도 시작했다. 하루 2000킬로칼로리를 섭취하는 게 목표다. 남들은 '그걸로 무슨 벌크업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1500킬로칼로리 내외를 먹던 내게는 밥을 한 끼 더 먹는 수준이다.
식단을 '관리'에 걸맞게 챙기다 보니 매번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내 식습관이 눈에 들어온다. 밥상에 야채도, 고기도 없다. 공깃밥 한 공기를 미처 다 비우지 못하고,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어떻게 이렇게 영양가 없게 먹어왔을까. 내 식단을 보니 알겠더라, 나는 스스로를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충 끼니를 때우고 허벅지와 몸집을 줄이려 노력했던 것은 삶에서 내 영역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1인분의 몫을 지키려 노력하는 대신 남에게 나누어주고 나는 그저 허기만 채우면 족했던 것 아닐까. '아무 때나 계속 먹어라, 많이 먹어라'던 바우의 충고가 지금은 '언제든지 계속 너를 소중히 대해라, 많이 아껴라'로 들린다. 나는 이제 나를 아끼기 위해 밥을 차려 먹는다.
흔히 축구를 땅따먹기 싸움이라고 말한다. 내 영역을 지키고 남의 영역을 가져오는 게임. 이를 잘하려면 일단 내 몫을 잘 챙길 줄 알아야 한다. 내 몫이 있어야 남의 몫도 넘볼 수 있지 않겠나. 얼른 벌크업 해서 그라운드를 나로 가득 채우고 싶다. 자꾸만 작아지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마음껏 커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