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마흐사 아미니(22) 의문사 규탄 시위 도중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고 있다.
테헤란 EPA=연합뉴스
이번 시위가 "히잡 착용"에 대한 "경찰폭력"으로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정(神政)국가를 건설했다.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290석의 의회와 대통령을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대통령중심제 국가다. 그러나 이란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니며, 종교 지도자인 라흐바르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맡는다.
라흐바르는 국민이 선출하는 지도자회의(مجلس خبرگان رهبری)에서 선임한다. 지도자의회는 이슬람 율법학자로만 구성된다. 라흐바르는 종신직으로, 한 번 임명되면 무기한으로 임기를 수행한다.
이렇게 선임된 라흐바르는 헌법수호위원회(شورای نگهبان) 의원 12명 중 6명을 임명한다. 나머지 6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는데, 대법원장 역시 라흐바르가 임명하는 자리다. 결국 사실상 라흐바르가 임명하게 되는 12명의 헌법수호위원회는 이란 정치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헌법 해석 권한을 갖고, 모든 선거를 감독하며 "부적절한" 후보자의 선거 입후보 자체를 취소시킬 수 있다. 매번 선거에서 30% 가까운 후보자가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입후보하지 못한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켜도, 이 위원회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효력을 갖지 못한다.
라흐바르 역시 포고령의 형태로 사실상 대통령보다 위에서 국가행정을 장악한다. 예산과 내각 인선 등도 라흐바르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국군과 경찰의 통수권자도 라흐바르다. 대통령과 의회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 표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란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는 없는 구조다.
사회적 보수화와 히잡
결국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사회는 꾸준히 보수화되었다. 2020년 이란의 언론자유지수는 전체 180개국 중 173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여성 가운데 직업을 가진 이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보장되어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가해지는 차별은 극심하다.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입장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도덕 경찰", 지도 순찰대의 여성 차별은 악명이 높다. 이란은 여성의 복장과 이동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태형과 공개 교수형 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하루 평균 3건의 사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지도 순찰대의 활동과 함께, 여성의 히잡 착용에 대한 강제는 이란의 보수화를 상징하는 요소였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직후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되자 당시 테헤란에는 10만의 군중이 모여 히잡 착용 강제를 규탄했다. 그러나 히잡 착용 의무화는 철회되지 않았다.
1983년 이란 의회는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채찍형을 내리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1995년에는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최대 60일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2005년 무하마드 하타미(سید محمد خاتمی,) 대통령이 퇴임하고 강경파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محمود احمدینژاد) 대통령이 취임하며 보수적 분위기는 강해졌다. 지도 순찰대가 창설된 때도 이 시기였다.
무너지는 신정
사회적 통제와 강압은 반발을 불렀다. 2009년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을 계기로 대규모의 시위가 일었다. 시위 과정에서 정부 측 추산으로만 36명이 사망했다. 2017년에도 20여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2019년에는 최대 1000명 넘게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되는 대규모의 시위가 일었다. 이란 정부 측은 인터넷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며 폭력적 시위 진압에 나섰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에 합류했다. 계기는 유가의 폭등으로 인한 경제 위기였으나, 시위 의제는 정권 교체와 라흐바르 하메네이의 축출까지로 확대되었다. 7천여명 이상이 시위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2019년 시위는 정부의 폭력으로 진압되었으나 이란 정치에 큰 상처를 남겼다. 2021년에는 물 부족 문제를 계기로 다시 한 번의 전국적 시위가 있었다. 이번에도 10여명이 사망하며 시위는 민주화와 자유화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2020년부터는 사실상 매달 사회 각 계층을 중심으로 한 시위가 벌어졌다.
과거 시위는 주로 경제적 원인에서 출발했던 반면, 이번 시위의 촉발 원인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었다. 여성에 대한 히잡 착용 강제와 '도덕 경찰'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사안에서부터 시위가 출발했다.
지금 이란의 시위대는 이슬람 신정국가의 사회구조 자체를 지적하고 있다.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사망한 어느 여성 청년을 추모하고 있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히잡을 불태우고 있고, 종교적 권위에 맞서는 자유와 개방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번 시위로 이란의 사회구조가 혁신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란 정부는 벌써부터 일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권위적인 시위 진압의 전조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시위를 이란 정부는 군과 경찰의 힘으로 진압해 왔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선은 점차 나아가고 있다. 유가를 두고 벌이던 시위는 이제 종교와 신정정치 그 자체를 겨누고 있다. 지금의 시위가 진압되더라도, 언젠가 새로운 계기를 만나 이 에너지가 언제 폭발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시민들의 분노는 모이고 있다. 한 여성의 죽음 앞에서, 길을 멈춘 시민들의 마음은 모이고 있다. 지금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입니다.
공유하기
거리에서 '히잡' 불태우고... 여성 의문사에 분노한 이란 시민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