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용히 사직합니다
Jorge Vasconez
첫 번째, 열심히 해도 바뀌는 게 없다. 한국인은 특히나 열심히 일을 한다. 폭우나 태풍이 몰아쳤을 때도 기어이 출근하는 탓에 K-직장인이라는 신조어가 세계적으로 퍼질 정도다. 이렇게 뼈를 갈아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몇 년이 지나고 몇십 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다.
그저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우리 가족이 살 집 한 채 조차 사기가 힘들고, 월급보다 가파르게 올르는 물가 탓에 나가는 돈이 더 많다. 승진도 마찬가지다. 정체가 되어 있다는 이유로 몇 년째 제자리다. 회사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내 미래는 더더욱 안 보인다.
두 번째, 불공정하다.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을 하거나 초과근무, 회식에 대한 기꺼이 참여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급여, 더 많은 혜택이나 승진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해 열심히 참여하는 직장인이 많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한 이유로 입사 동기라고 해도 누구는 승진에서 누락될 수 있고, 월급이 갑자기 삭감될 수 있고, 당황스럽게 퇴사를 권고받을 수도 있다. 그놈의 '회사 사정'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런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사회가 왔다.
세 번째, 더 이상 희망고문에 놀아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직원 몇 명이 퇴사를 했다. 남은 건 그들의 퇴사 이후 일에 대한 재분배. 이미 업무적으로 포화상태인 직원들이 반발하기라도 하면 '고통분담'이라는 이유로 일을 또 나눈다. 남는 사람만 손해인 것이다.
개인생활보다 업무를 중시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인 '허슬 컬처(hustle culture)'는 MZ세대에게 낯선 단어다. 오래 일하고 결과물을 내도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고문을 할수록 신뢰는 추락한다.
네 번째, 회사 밖 삶이 더 재밌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을 챙기는 시대다. 회사 밖에도 할 게 많다. 테니스, 볼링, 골프, 승마 등 다양한 신체 활동과 더불어 느슨한 연대를 바탕으로 커뮤니티에 참여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회사 밖에서 세상의 참다움을 느낀다.
회사가 전부일 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업무 외 사소한 다른 일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며 스트레스만 받기 때문이다. 회사에 얽매이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할 게 많고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다섯
째, 회사는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퇴직과 퇴사가 빨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임금이 줄어들거나 회사 사정이 안 좋으면 쫓겨날 수 있는 게 바로 다음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더 커진다.
공부하는 직장인을 직장인과 학생의 합성어인 '샐러던트(Saladent)'로 부르기도 한다. 불안한 고용환경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직 시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투잡을 통해 미래를 대비한다. 회사에 대한 기대는 날아가버린 지 오래다.
회사는 양치기 소년이다(물론 아닌 회사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지금은 힘든 시기지 않냐며 함께 노력하자고 사장인 내가 노력하는 거만큼 다 같이 노력하면 사정이 좋아질 거고, 나중에 성과급으로 확실히 챙겨주겠다고 몇 번이나 희망을 전해준다. 그러다 이게 다 거짓말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회사가 이런 거짓말을 계속하면, 나중에 진실을 말해도 직원은 믿을 수 없게 된다. 차라리 "회사 믿지 말고 네 살길 알아서 찾아라. 그 대신 워라밸은 보장해 줄게"라고 하면 더 신뢰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다. 짧은 인생보다도 더 짧은 회사생활에 내 인생을 걸기엔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조용히 사직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다재다능한 외유내강인 여행작가. 낯선 도시를 탐닉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인 사람.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여행 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학 교직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