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이해할 수가 없다. 한 일이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가? 동네 엄마들과 커피 한 잔 마신 게 다인데! 정말 집 앞 카페에 앉아 있던 게 전부다. 말수가 적은 나에겐 발언 시간이 많지도 않았는 걸. 도대체 납득이 안 된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가 기절할 뻔했다. 지상까지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데 어지러울 정도로 숨이 찼다. 몇 번을 쉬고 서야 겨우 땅을 밟게 되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임신, 출산, 육아를 밟아온 세월이 10년이다. 아이 키우는 동안 내 주된 운동 반경은 20평 남짓 되는 집,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 반경 100m였다. 연년생 아이 둘과 외출은 당연히 자차였다. 지하 주차장부터 목적지까지가 걷기의 전부다. 체력이 붙어 있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과 같이 내 몸도 변했다. 움직이지 않는 생활 습관과 함께 나이도 먹었다. 변하지 않은 건 나를 인식하는 내 생각뿐이다. 머릿속의 나는 며칠 밤샘도 끄떡없는 이십대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이 둘의 간극을 알아채고 인정하는 데까지, 거기서 몸이 움직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수영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아이가 수영 레슨을 받는 동안, 나는 옆에서 자유수영을 하면 되겠다!' 시간이 없어 운동할 수 없다는 핑계가 쏙 들어가는 생각이었다. 드디어 저질 체력 탈출이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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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속에 들어가면 나와 물만 남는다. ⓒ elements.envato
레인 한 바퀴를 돌았는데 탈진할 것만 같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열심히 움직이는데 내 몸은 꿈쩍도 않는다. 한참 뒤에서 출발한 사람 손이 내 발 끝에 닿으면 민망해서 벽에 바짝 붙는다. 어떤 사람은 알아서 내 옆을 피해 가기도 하는데 물 속에서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지친 몸보다 의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몸짓 때문에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처음이니까 어설픈 게 당연해. 수영 강습은 20년 전 3개월이 전부잖아? 물에 뜨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강습도 안 받고 자유수영을 한다는 건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머릿속에 흐르는 말을 소리로 뱉는다. 옆사람이 들으라듯.
한 포털에서는 어느 날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블로거를 모았다.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블로거들이 대거 인플루언서 딱지를 달았다. 이 추세에 뒤지면 안 될 것 같아 뒤늦게 인플루언서에 지원했다.
"팬 추가 했습니다. 맞팬 해주실 거죠?" 하루에도 수십 개씩 스팸 쪽지가 달려들었다. 피곤했다. 스팸보다 서로 영양가 없이 덩치만 키우며 경쟁하는 행태가 더 불편했다. 인플루언서 선정 일주일도 되지 않아 관련 기능을 모두 닫았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 하나로 인플루언서에 달려든 결과다.
SNS에 집 짓고 사는 나는 자연스레 나와 비슷한 무리에 속한다. 이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적당한 숫자는 필수다. 더 많은 하트와 댓글! 내가 가져오지 못하면 남이 가져간다. 끝없는 무언의 경쟁 속에 나에게 남은 건 무의식적 습관이었다.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잘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된다.' 물 속에서 온 몸을 바둥대다 보니 내 몸에 붙은 경쟁 심리들이 잔뜩 튀어나왔다. 기회만 생기면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내 마음의 찌꺼기들이.
다시 생각한다. '체력을 위해 시작한 수영이다. 대회에 나갈 일은 없다. 남들보다 잘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부끄러울 필요도 없다. 나에겐 오직 하나, 체력 상승이라는 목표가 전부다.' 이렇게 생각하니, 경쟁해야 한다는 마음도 주변의 시선도 걷혔다. 변명마냥 중얼대던 입을 닫고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나와 물만 남는다. 물을 헤쳐가는 동안 내 몸에 닿는 물을 느끼며, 내 몸과 생각을 바라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이의 학원 선택이 난 왜 이렇게 어려울까? 원어민 수업 기회는 얼마 안 남았으니까 놓치기 싫고, 중학교 가면 내신도 중요하다니 꼭 챙겨야겠고, 영어 자신감도 올려 주고 싶은 거네. 한 학원에서 이 모든 걸 할 수가 없으니, 괴롭구나. 이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아이의 자신감이지. 자신감이 있어야 말을 하든 시험을 보든 가능하니까. 제일 중요한 건 그거였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영어 학원 선택 문제로 최근 한 달도 넘게 골머리를 앓았다.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내내 그 생각에 머물렀다. 그리고 떠오른 건 모두를 다 갖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다.
평소 내가 알아채지 못한 깊은 마음들은 물 속에서 쉽게 떠오른다. 그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새 스르르 풀려 물 위에 흩어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영은 적극적 명상,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불리는 활동이라고 한다.
물속에서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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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s://unsplash.com/
명상은 흘러가는 내 마음과 생각을 관찰하며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활동이다. 우리의 진짜 마음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1차 감정이라고 하는 표면적인 모습은 진짜 우리의 마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 속에 파묻혀 저 깊이 숨어 있다.
명상은 진짜 내 마음을 발견하는데 첫째 목적을 두며, 발견한 마음을 통해 깨달음에 닿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은 내 안의 생각과 마음이기에!
산 넘어 산인 육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돈 문제, 이 둘을 동시에 잘 해결해 나가야 하는 중압감에 허우적대던 시기, 나도 명상을 배워보았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면 내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질 거란 기대와 달리, 내 머릿속은 더 소란해졌다.
방금까지는 들리지 않던 차 소리가 들려오고, '가스 밸브는 잠그고 왔나? 오늘 저녁엔 뭘 먹어야 될까? 잠이 오는데? 나 잘하고 있나?' 이런 식의 잡생각만 지나갔다. 과연 이 활동이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효과가 있다고 믿기에 효과를 발휘하는지 모를 상태로 보낸 12주가 생생하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최근엔 움직이는 명상이 늘고 있다고 한다. "수영은 적극적 명상으로 분류돼요. 움직이며 하는 명상이라는 뜻인데, 저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이 잘 안 맞아서 다른 명상을 찾아 봤거든요. 명상 효과인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에 수영만큼 좋은 운동이 없대요!" 가까운 심리전문가는 수영을 할수록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영 후 느꼈던 개운함에는 진짜 이유가 있었구나! 수영으로 수 없이 터뜨렸던 숨과 함께 내 마음의 응어리들도 같이 터뜨렸던 모양이다. 생각 찌꺼기를 털어내고 얻은 단단한 마음. 체력을 위해 시작했던 수영으로 의외의 선물을 얻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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