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안락사 현장의 담당자조차 그곳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 중에 선생님처럼 의연한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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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던 날의 그 긴장감, 그 절박함, 그 두려움, 그 안타까움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저는 안도합니다. 만약 제가 책을 내지 않았다면 평생 그 짐을 혼자 지고 가야했을 테니까요.
제가 선생님과 스위스에 동행한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려하며 말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지요. 평생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할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거였지요.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인도 아닌,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의 죽음길에 왜 신아연 작가가 동반해야 하냐며.
선생님은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 조력사를 택한 분이지만, 앞의 두 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세상에 드러나기는 선생님이 처음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의 담당자조차 그곳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 중에 선생님처럼 의연한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막상 거기까지 와서도 10명 중 6, 7명은 마음을 바꾸거나, 결행을 한다 해도 수 차례의 머뭇거림으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감추지 못한다니, 선생님은 스위스에서도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실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에 비유하신 선생님, 그러나 정작 선생님은 이제 많은 이들의 가슴에 한 권의 책으로 남았습니다. 잊힐까,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까 안타까워 하신 선생님, 이제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