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지방선거 기간, 선거운동 중인 차해영 서울 마포구의원(민주당, 당시 후보자).
차해영
190. 숫자가 올라갔다 내려가더니, '190'에 파르르 멈췄다. 어린 시절에 꿈꾸던 키가 190이었는데 이 숫자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단, cm가 아닌 mmHg로 말이다. 2021년 11월. 나는 최고혈압 190을 찍었다.
당시는 한 해 사업들을 마무리하는 나날이었다. 잠을 줄이고 일해야만 마감을 지킬 수 있었고, 기존 일을 수습하기도 바쁜데 또다시 새 일을 벌여놓은 터였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 않았다. 몸은 계속 쳐지고 피곤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대화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어찌하나 고민하다가 비타민 주사의 힘이라도 빌리려고 병원을 찾았다. 대기하는 동안 혈압을 측정했다. 원래도 내 혈압이 높다는 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190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니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숫자였다.
인생 최고 혈압, 최저 컨디션...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측정 혈압을 보고 혈압약을 먹는 것을 제안했다.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관리에 들어가는 거니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요즘은 20대·30대에도 혈압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비타민 주사를 맞고 2주치 약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주변에 혈압약을 먹는다 했더니, 지금부터 먹으면 관리하면서 계속 먹어야 할 수 있다며 다른 방법으로도 혈압을 조절해볼 것을 제안했다.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운동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당시 난 걷기만 해도 숨이 가쁘고 발목과 발바닥이 아팠다. 가끔은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게 버거웠다. 인생 최고의 혈압을 찍고, 인생 최대의 체중을 찍었던 그때... 몸으로 느끼던 것을 숫자로 확인하고 나니 마침내 결론에 다다랐다.
'더 이상 나중은 없다.'
친구는 생활단식을 추천했다. 그때까지 난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위로라며 매일 같이 스콘, 케이크 등을 사서 먹던 터였다. 잠을 줄인 대신인 듯, 자기 직전까지 음식을 계속 먹었더니 일어나면 늘 부어 있었다. 일단 먹는 것부터 조절하기로 했다. 한 달 반 정도 생활단식을 하고 매일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더니, 몸이 가뿐하고 일어나기가 쉬워졌다. 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몸이 실제로 변하는구나, 새삼 신기했다.
재활운동에 가까웠지만... 이 운동 만나니 사는 맛이 났다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 됐다는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혼자 운동할 자신은 없어서 PT를 받기로 했다.
처음엔 운동이라기보다는 재활에 가까웠다.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알려주는 자세를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되지 않았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누워서 다리를 들고 무릎을 펴고, 굽은 어깨와 등을 풀어줬다. 자세가 조금씩 나오자 맨손으로 하던 운동을 1kg 덤벨을 들고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게가 늘어났다. 팔이 덜덜덜 떨렸지만, 무게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자세가 계속 나오지 않았던 스쿼트 자세를 제대로 취할 수 있게 되면서 바벨을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40kg은 가볍게 들었다. 며칠 뒤 50kg을 시도해보니, 어렵지 않게 들었다. 60kg에서 처음으로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일 무거웠던 내 몸을 내가 들어 올렸다는 성취감도 들었다. 양쪽 두 다리로 굳게 지탱하며 무게를 들어올리니, 왜인지 그제야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