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메리 펠톨라 민주당 의원. 사진은 8월 3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데나이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행사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사실 알래스카에서는 과거 유사한 일이 벌어진 적 있었다. 알래스카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주에는 수기투표제가 있다. 원하는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을 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투표용지 마지막에 공란을 두어, 여기에 유권자가 마음대로 이름을 써서 내면 그것도 유효표가 된다.
2010년, 알래스카의 현직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알래스카는 아직 선호투표제를 도입하기 전이었고, 경선에 탈락하면 공화당 후보로는 본 선거에 나설 수 없었다.
제3당 입당이나 무소속 출마설까지 돌던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결국 이 수기투표제를 활용하기로 한다. 경선에서 탈락했으니 공화당 후보로 출마는 못 하지만, 선거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써 달라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이 전략을 통해 무르코우스키는 39.5%의 표를 얻었고, 선거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알래스카의 이 독특한 경험과 이번 선거제도 개혁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선거제도를 이용해 기성 정치세력이 원하지 않는 후보를 당선시켜본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선거제도의 변혁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알래스카에서 민주당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성장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의 선거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고,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고, 지하정부가 미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동조하는 한 정치인의 의회 진입을 막아냈다는 사실이다.
선호투표제는 1등만 기억하지 않는다. 2등과 3등의 뜻을 기억하고 존중한다. 1등만 얻어서는 당선될 수 없다. 2등과 3등의 여론까지 모두 받아안아 과반을 만들어야 당선될 수 있다. 이것은 극단화되는 정치를 막아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2010년 수기투표제를 통해 당선된 후 2016년 재선에 성공, 지금까지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에 동의한 7명의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내 경선과 양당 사이의 본선이라는 선거제도가 아닌, 다른 선거제도를 활용해 본 후보자는 극단화되는 정치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알래스카에서 선호투표제를 이용한 역전극이 벌어진 뒤, 미국의 여러 주에서 선호투표제 도입에 대한 여론이 나오고 있다. 뉴욕 주를 비롯해 이미 일부 선거에서 선호투표제를 도입한 주들도 있다.
미국의 선거제도에는 여러 문제가 지적된다. 고착화된 양당제 구도는 양당과 다른 정치색을 가진 제3세력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며 정치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감소시켰다. 대통령선거의 승자독식제는 정작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요원하다. 바꾸기 어려운 헌법조항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이미 익숙해진 정치문화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조금씩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알래스카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그 성과가 지렛대가 돼 오늘의 역전과 반전이 만들어졌다.
알래스카의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단지 3개월의 단명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양당제의 틀을 본질적으로 바꾸지 못하더라도 제도를 통해 극단을 걸러내고, 정치의 문제를 조금씩이나마 보완해나갈 수 있다는 첫걸음이다.
알래스카의 방향이 꼭 정답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고착화된 지지세를 역전시키는 변혁이 가능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알래스카의 이번 선거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정치제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충분한 희망을 보여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기록되지 않은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입니다.
공유하기
공화당 텃밭 속 민주당 역전승, 알래스카 선거제도에 주목한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