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업무방해 혐의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엄기용 조합원.
유성호
올해도 운송료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 노동자 130여 명은 지난 3월 노조를 설립했다. 70여 명은 수양물류, 나머지 60여 명이 2차 하청사 소속이었다. 이들은 이후 사측으로부터 모두 계약 해지됐다. 노조 파괴라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노조 설립 후 현재까지 이탈자는 0명이다.
엄씨는 "회사가 집단 해고처럼 강경책을 쓰면 파업 도중 이탈자가 생긴다던데, 우리는 오죽 배고팠으면 130명 중 이탈자가 한 명도 없겠나"라고 했다. "회사가 개별적으로 '파업 풀면 봐주겠다'고 갈라치기를 시도하지만, 들어가서 일을 하나 차를 세우고 파업을 하나 큰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치매인 홀어머니를 돌본다는 엄씨는 "석 달째 일을 못하니 대출만 늘고 있다"면서도 지난 16일부터 16일째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판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4명의 동료들을 먼저 걱정했다. 엄씨는 "누가 하고 싶어서 파업하고 저 위험한 데 올라가나"라며 "우리도 일을 하고 싶다. 추석엔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씨를 29일 고공 농성장이 올려다 보이는 서울 강남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만났다.
"23년 소주 날랐는데… 돌아온 건 수십억 손배소에 아파트 가압류"
▲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23년 소주 날랐는데... 돌아온 건 수십억 손배·아파트 가압류" ⓒ 유성호
- 부동산 가압류 결정문을 받은 건 언제였나.
"법원 서류에는 6월 23일 결정된 것으로 나오는데 조금 더 지나서 알았다. 내가 집에 없을 때라 아내가 전달 받았다. 놀라서 걱정하는 아내에게 '별 거 아니다'라고는 했는데. 나도 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눈앞이 캄캄했다. 제가 회사에서 1, 2년 일한 것도 아니고 23년째다. 회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25년 전에 아내와 열심히 일해 분양 받은 내 소유 첫 집이다. 지금 집 시세는 한 2억 조금 안 될 것 같다. 집이 가압류 잡히면 당장 대출도 제한되고 매매도 막힌다는데. 사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다. 동료들 마음 약해질까봐 얘기는 안 하지만… 회사에 배신감이 크게 든다."
- 손배·가압류 대상이 된 이유는.
"노조에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집회할 때 마이크 몇 번 잡았던 게 전부다. 내가 포함된 건 11명 대상 27억 원짜리 1차 손배소다. 처음엔 5명 상대로 5억이던 게 나중에 그렇게 늘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동료 14명을 대상으로 27억 원짜리 2차 손배소가 하나 더 청구됐다더라. 회사는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더 신청하겠다고 하고 있다. 파업했다고 거액을 들이미는데, 평소 우리가 일한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뜻 아닌가?"
- 손배 대상이 된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나.
"말해 무엇 하나.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금액인 걸. 속만 아프다. 다들 어이 없어 할 뿐이다. '이걸 어떻게 나눠서 낸다' 이런 얘기 할 처지도 아니고. 농으로 '우린 어차피 뺏길 것도 없다', '뺏길 재산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 친구는 화물차가 전 재산이라더라. 20년 넘은 차라 지금 팔아도 1500~2000만 원 밖에 못 받는다고. 그런데 27억? 웃음 밖에 안 나온다."
- 부동산 대신 화물차가 가압류 된 노동자도 있다.
"산 지 얼마 안 돼서 가격대가 좀 나가는 화물차들이 주로 잡힌 것 같다. 내 14톤 화물차는 2007년부터 탔다. 오래 돼서 돈이 안 된다. 2007년에 샀을 때 차 가격이 7000만 원 정도였다. 지금은 2억 원 정도까지 올랐다. 세 배나 오른 거다. 그런데 그 사이 운송료는 그대로다. 이게 말이 되나. 차를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차 사면 당장 5년에서 10년은 차량 할부금으로 다달이 수백만 원이 나갈 텐데. 정말 폐차 수준 아니면 새 차 못 뽑는다.
차가 오래 되면 고장이 자주 난다. 화물차는 일반 차량과 다르게 점검 한 번 받으면 기본이 100만 원, 사고라도 나면 1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1년에 사고 두 번 나면 사실상 그 해는 공친다는 얘기다. 사고 안 나길 빌면서 다닌다. 허구한 날 공업사 가서 차 고치고 있으면 그날은 돈도 못 벌고.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오래된 차를 몬다."
- 손배·가압류를 낸 주체가 수양물류 등 하청 업체가 아닌 원청인 하이트진로다.
"그렇다. 교섭을 해도 회사는 아직도 하이트진로에 물어봐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하이트진로는 우리가 자신들과 계약 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안 지려 한다. 그래 놓고 손배·가압류는 우리에게 직접 걸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 최근 대우조선해양도 파업을 했던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배소를 내 논란이 일었다.
"우리도 그렇고, 돈 많은 사람들이 돈 없는 사람들을 돈으로 꿇어 앉히려는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이 알까. 우리도 좀 살려달라고 외친 것뿐인데…"
"새벽 5시 반부터 일… 월 급여는 150~2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