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내중문 베른내 마을 포구다. 마을 주민들이 유적비를 세워 선조들이 일구어 놓았던 삶의 터전을 잊지 않고 보존해 가고 있다.
문운주
한참을 걷다 보니 내리막길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중문관광로 삼거리에서 천제연 쪽이 아닌 해변 쪽으로 향하고 말았다. 마을회에서 세운 유적비가 보인다. 시커멓게 그을린 체격 좋은 젊은이가 서핑도 체험하고 배도 탈 수 있는 곳이라고 가르쳐 준다. 주민들의 자생적인 생활 터전인 모양이다.
중문동 2631번지 주변 일대에 100여 년 전 경주 김 씨, 김해 김 씨, 고부 이 씨, 원주 원 씨, 남평 문 씨, 평택 임 씨 등이 설촌 하여 20여 호가 25반을 구성 포구를 개척 축조하여 어업을 일으켜 중문 본리에 해산물을 공급하면서 3세까지 이어져 왔던 베른내라고 불리는 곳이다. [중략]
우리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서민들이나 지역 주민들의 영원히 잊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하며 이곳에 유적비를 세우다. 2006.1.
중문 관광단지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지역 주민들이 이곳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 놓은 유적비 내용이다. 환경파괴와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가슴 조였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당시 주민들은 어디서 망향의 한을 품고 살고 있을까.
지금까지 트레킹이 농촌 들녘과 해변이었다면 다음은 산길이다. 나무 데크길이 구부구불 이어진다. 칡넝쿨이 이리저리 감기고 새소리, 매미 울음소리의 리듬에 맞춰 걸었다. 제주도에는 많은 오름이 있다. 36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오름은 산 또는 봉우리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왜 베릿내 오름이라고 한지 알아요?"
"이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 아니에요?"
오름 정상,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베른내라는 마을 이름을 유적비에서 보았던 터라 아는 척했다. 호주에서 10여 년을 살다왔다는 그분은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신다. 동쪽으로 한라산이 안개속에 묻혀 아스라하다. 서쪽으로는 중문 색달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잠깐 숨을 돌린 뒤 다음 행선지인 천제연 폭포로 향했다. 선녀가 노닐 만큼 물이 청정하고 경치가 빼어나다는 폭포다. 제1, 2, 3의 3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제1 폭포 주변 절벽은 주상절리로 주변 나무와 어울려 절경이다. 비가 온 후가 아니면 폭포를 볼 수가 없다고 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